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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은 20세기 한국 학계가 만든 간판상품"

노관범 교수 '역사비평'서 '실학=실용 학문' 비판
경기도 남양주 다산 정약용 생가에 걸려 있는 '여유당' 현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기도 남양주 다산 정약용 생가에 걸려 있는 '여유당' 현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실용성을 강조한 학문으로 '내재적 근대화의 맹아'라는 평가를 받아온 '실학'(實學)의 지위가 위태롭다.

조선 후기에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관념에 빠진 성리학을 구하기 위해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내세웠다는 실학의 성격을 부정하는 주장이 학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최근 논문과 저서를 통해 실학이 조선 후기 사족체제의 자기조정 프로그램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펼쳤고, 황태연 동국대 교수도 실학은 반근대적이고 복고적인 경향이 뚜렷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근대 한국 사상사를 전공한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도 가세했다. 그는 계간지 '역사비평' 최신호에 게재한 글 '근대 초기 실학의 존재론'에서 역사적으로 실학이 과연 학문으로 존재했는가를 분석했다.

노 교수는 일단 실학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다. 의로운 학문은 '의학'(義學), 용기를 주는 학문은 '용학'(勇學)이라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도 굳이 '실학'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조선시대에 나타난 실학 담론이 엄연히 유학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실학자로 분류되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실학에 관한 관념이 매우 희미했다는 것이 노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조선 후기 실학은 조선 사회가 문(文), 허(虛), 가(假)로 인해 변질되고 있으니 유학의 본래 목적인 수기치인의 실(實)로 돌아가자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며 "학문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경세학이었고, 표면적으로만 정치경제나 사회경제가 드러날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 교수는 "대한제국 시기 이후 진행된 연구에서도 실학은 학문이라기보다 학풍으로 인식됐다"며 "경제 개조, 생활 개량 등이 실학의 내용으로 거론됐으나, 학문적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학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그저 유형원-이익-정약용으로 연결되는 학자 계보를 새로운 학파로 분류하고 실학파 혹은 실사구시파라고 지칭했다는 것이다.

홍대용이 중국 선비로부터 받은 편지. [숭실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홍대용이 중국 선비로부터 받은 편지. [숭실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실학은 일제의 폭정에서 벗어난 뒤 학문으로 부상했다. 노 교수는 "해방 이후 본격적인 실학 연구가 이뤄지면서 실학은 학풍에서 학문으로 굳어졌고, 실학 지식의 전문화와 대중화가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20세기 한국 학계는 실학이라는 간판상품을 만들었고, 실학의식으로 충만했다"며 "실학은 한국 민족의 후진성을 구성하는 전근대적 체질을 극복하고 근대정신을 수립하는 실천적 문제와 연관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즉 실학은 엄연히 후대에 만들어진 허상이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 후기 새로운 유학사상을 현대로 소환해 그럴듯하게 포장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노 교수는 결론에서 "실학이라는 이름의 연구는 본질적으로 조선 후기 실학파에 관한 연구라기보다 20세기 실학의식으로 조선 후기 실학파를 만들어왔던 한국 국학 세계의 실학사상에 관한 연구를 의미한다"며 실학에 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03/10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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