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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페셜] 대한민국 제약의 뿌리 깊은 힘 05-25 12:13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대한민국 제약 바이오 업계의 위상은 코로나19 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코로나19 발생 전, 세계 제약 바이오 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한국은 의약품 시장 및 제약사 규모가 의약 선진국과 비교할 때 작은 편에 속했다. 신약 개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았다.

세계 의약품 시장은 2018년 기준 약 1천418조 원 규모다. 미국(약 571조 원)이 전체의 40.2%를 차지하고, 중국(약 155조 원, 11%), 일본(약 101조 원, 7.2%), 독일(약 63조 원, 4.4%)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한국 시장은 약 23조 원 규모로 세계 12위(1.6%) 수준이다.

세계를 덮친 감염병 위기가 'K방역'으로 주목받은 한국엔 어쩌면 지금은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제약 바이오는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이자 국민산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의약품 70% 이상 자급률을 가지고 있어 팬데믹 상황에도 해외에서 벌어진 필수 의약품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약은 국민 생명과 건강 등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왜, 한국 제약 바이오에 주목할까? 'K팜'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을 전망해본다.

◇ 강화도조약, 국내 근대 제약산업의 태동을 열다

1876년 조선과 일본의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며 많은 것이 변화했다. 이후 국내에 서양 의약학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의약품 산업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897년, 국호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던 해에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기업인 동화약방(현 동화약품)과 최초의 신약인 활명수가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법인 제약기업은 1913년에 설립된 조선매약주식회사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현대적 기업 형태의 제약기업이 연이어 등장한다. 김상태 서울대병원 의학 역사문화원 교수는 "1898년 무렵부터 일본인 매약 업자들이 들어와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부산, 원산, 인천 등 개항지에서 약을 팔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에게도 판매했다"며 "그 후 부산, 원산, 인천을 벗어나서 서울 및 전국으로 확대돼 나갔다"고 말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제약시장은 불모지였다. 국민 건강도 위협받았다. 혹독한 차별 속에 제약회사가 하나둘 생겨났다. 1926년에는 미국에서 귀국한 유일한 박사가 국내 최초의 서구식 제약기업을 세운 뒤 직접 생산 설비를 갖추고, 소염진통제를 개발했다.

유 박사는 미국 선진 의약품을 국내로 들여오며 국내 제약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그는 당시 열악했던 위생, 보건을 개선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 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소망하며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광복을 맞이할 무렵 한국인이 경영하는 제약업소는 250여 곳이었지만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드물었다.

◇ 약방 외판원에서 제약회사 설립까지…고촌의 도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학살, 수탈, 강제노역, 전쟁 성범죄 속에 민생이 더욱 피폐했다. 이 시절은 제대로 된 의료 환경은 커녕 먹는 것, 입는 것조차 힘들었을 때였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서구의 구호 의약품이 국내에 다량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때가 현재 국내 제약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인 제약 회사들이 등장하는 시기였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미국 국제협력국(ICA)의 원조자금을 토대로 제약업계가 드디어 제조업다운 구색을 갖추게 됐다.

국내 대표적 제약사 중 하나인 종근당의 창업자 고촌 이종근 회장 역시 1941년 '궁본약방'이라는 작은 약방에서 시작했다. 1919년생인 고촌은 자전거를 타는 약방 외판원으로 시작했다.

당시 많은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고촌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새로운 일인 약방 창업에 도전했다. 3년 남짓 어깨너머로 익힌 약품에 관한 지식으로 호기 넘치게 도전했지만, 상황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촌은 그렇게 약을 통해 세상을 알아갔고. 제약이 국민의 삶에서 여러 중요한 가치를 두루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경영의 안정을 이뤄가던 무렵 커다란 위기인 6.25 전쟁이 터졌다.

부산으로 피난 온 팔도의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창궐하는 질병에는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고촌은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 공장에 잠입, 원료를 갖고 부산으로 가서 외상 치료 연고, 회충약, 빈대약을 만들어 피난민들에게 제공했다.

◇ 한국 제약기업들, 기술제휴와 합자로 일어나다

1960년대가 되자 국내 제약기업들은 기술제휴와 합자 투자까지 이뤄냈다. 1964년 한독약품과 독일 훽스트가 국내 최초의 합작기업을 설립했고, 1977년에는 GMP 기준이 제정되면서 의약품 품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고촌의 제약사 역시 국제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제약계 원로인 엄상주(94) 복산나이스 명예회장은 "외자회사하고 가장 먼저 제휴한 곳이 종근당인데 로슈에서 여러 가지 약이 나오지만, 종근당을 통해 판매한 사리돈이라는 해열 두통제가 있었다"며 "그게 대표적으로 많이 팔렸고 그 후 로슈가 한국에 공장을 지어서 합작했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당시, 활발하게 수출 움직임을 보이던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제약업계만은 외국 원료를 수입해서 사용했다. 의약품 원료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고촌은 약업계의 통념을 깨트리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했다. 1965년 동양 최대 규모의 항생제 원료 합성 공장을 준공한 것이다.

연간 100여만 달러의 외화가 절약되는 수입대체 산업공장이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체 기술로 항생 의약품 원료를 합성해 우리나라 제약산업 발전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했다.

1968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았고, 이후 미국, 일본, 동남아 등 세계 약 40개국에 수출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 앞장섰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체 중 연구 활동에 막대한 자금은 투자하는 업체는 별로 없었다.

고촌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정밀화학공업 육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 연구와 기초 원료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후 1971년 동탑산업훈장 수상, 1975년 은탑산업훈장 수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 신약 개발을 통해 해외시장에 진출하다

그렇게 수많은 제약인의 피와 땀에 국가와 생명을 위하는 사명감과 뜨거운 마음으로 'K팜'은 성장해왔다. 1990년대는 본격적인 신약 개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 도입으로 연구개발이 본격화됐는데, 이에 힘입어 1999년 7월 국산 신약 1호인 SK케미칼과 SK제약의 위암 치료제 '선플라 주'가 탄생한다. 2003년에는 LG생명과학의 국내 개발 신약 최초로 항생제 '팩티브'가 미 FDA 승인을 받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세계 10번째 신약개발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2007년, 한미 FTA가 타결되고 이후 한·EU, 한·중 FTA 등 국제무역이 활성화되면서 국내 제약산업계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내수시장을 넘어 신약 개발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의 필요성을 느낀 제약기업들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2018년과 2019년은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이 도입된 시기다. 2018년 3월 인공지능 신약 개발지원센터 추진단이 출범했고, 1년 뒤인 2019년 3월에 인공지능 신약 개발센터를 개소해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이 도입됐다.

전문가들은 완제의약품 자급률은 74%인 반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16%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약 주권 실현을 위해 원료의약품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 전 세계를 불안에 빠트린 코로나19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약'이라 할 수 있다. 제약, 의학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 제약산업은 국력의 기본인 국민의 건강을 지킴은 물론 언제 닥칠지 모를 재난 상황에 대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국가 기반 산업이다.

뿌리 깊은 역사에 근간한 우리나라 제약과 바이오 산업의 역사, 세계가 주목하는 이때 모두가 합심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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