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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컷] 낱개로 중고마켓 올라온 커피믹스…그저 바늘도둑일 뿐일까요? 05-06 07:00

(서울=연합뉴스) "헬스나 필라테스 영수증 구해요!"

지난달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수상한 '구함글'이 올라왔습니다.

A씨는 "회사에 비용 청구해 받으려 한다"며 "4월 중 50만∼100만 원 정도 (결제한) 영수증"이라는 구체적 조건도 적었는데요.

누리꾼들은 "가짜 영수증을 내고 체력단련비를 챙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지난 2월에는 회사 비품을 몰래 판매하는 듯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는데요.

커피믹스 등 탕비실에 있을 법한 식품이 포장 없이 낱개로 올라왔기 때문이죠.

최근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일명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인데요.

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변형한 단어로 회사 물건을 개인적으로 소비하며 만족감을 얻는 행동을 말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확횡'을 검색하면 다양한 인증샷이 나오는데요.

사무용품을 집으로 가져가거나 사무실에서 전자기기를 충전하는 것은 기본. "볼일을 참았다 출근 후 화장실에 간다"는 이까지 등장했죠.

하지만 A씨 경우처럼 일부는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기도 합니다.

A씨가 거짓 영수증을 구매, 제출한 사실이 적발되면 사기죄로 처벌 가능하고 판매자에게도 사기 방임죄를 물을 수 있는데요.

일부는 빡빡한 직장 생활에서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2018년 설문조사에서 '소확횡이 죄가 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소소한 수준이므로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26.2%로, '횡령은 횡령이므로 무조건 죄가 된다'(18.5%)는 답변보다 많이 나오기도 했죠.

반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며 나중에 공금까지 손댈 수 있는 '엄연한 범죄'로 못 박는 견해도 있는데요.

김혜영 교육컨설팅그룹 울림 대표는 "소확횡은 결국 도덕적 해이를 하나의 놀이문화로 희화화한 것이며, 윤리적 둔감 현상을 야기한다"고 꼬집었습니다.

회사 비품을 사적으로 쓰는 횟수가 잦거나 누적액이 크고 마음대로 처분하려 했다면 징계 사유는 물론 형사처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 회사 창고에서 커피믹스를 훔쳐 되팔다가 걸린 식품업체 직원이 절도 혐의로 입건됐는데요.

당시 '지나친 대응'이라며 두둔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빼돌린 양이 3천400만 원어치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이 뒤집혔죠.

2017년에는 130만 원 상당의 공구를 외부 반출하려다 발각된 사원이 절도죄로 기소된 것은 물론 해고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이은혜 노무사는 "초과근로수당을 노리고 허위로 근무시간을 기록했거나 영수증을 조작해 출장비를 타낸 것은 물론 버스 기사가 요금 800원을 커피값으로 쓴 행위 등에 대해 중징계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영재 변호사는 "비품 관리 담당이라면 업무상 횡령, 그 밖의 업무라면 절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는데요.

업무 시간 중 개인 용무를 보는 '월급 루팡' 역시 취업규칙 위반으로 징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몸살을 앓던 기업들도 이제 더 눈감아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신현종 페어링HR 대표는 "사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통해 개인 문서 출력을 제한하는 업체도 많다"고 밝혔는데요.

이 같은 일들은 외국에서도 골칫거리.

전기 민영화가 이뤄진 일본은 일터에서 사적 전기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허가 없이 전기를 쓰면 '전기 도둑'으로 처벌하기도 하죠.

국제공인부정조사전문가협회 2020 보고서는 미국 기업의 재고품 등 비현금자산 도난율이 18%에 달한다고 전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탈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분석합니다.

공용물건이기에 죄의식이 낮은데다 안 쓰면 손해 보는 느낌마저 들고 인증샷 릴레이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고 있다'는 동조심리를 자극, 죄책감이 분산되죠.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확횡'이 하나의 기준이 되고 따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릇된 행동 습관이 만들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최창균 노무사는 이를 막기 위해 "직원 의견을 취합해 사규 등에 관련 규정을 마련해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습니다.

'평생직장' 개념이 퇴색하고 조직 충성도가 낮아진 요즘 분위기가 '소확횡'에 한몫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퇴근 후 업무지시 거부 등 철저한 공사 구분을 원하는 MZ세대가 정작 회사 자산을 유용하는 모습은 모순으로 비치기도 하는데요.

사회 초년생들이 직업윤리를 갖출 수 있도록 보다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서찬석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발적으로 헌신하면 실질적 보상을 해주는 등 동기 부여 방법을 기업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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