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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컷] "거기 직원인 줄 알았는데" 음지에 가려진 마트 배송기사들 01-27 10:42

(서울=연합뉴스) 지난 21일 극적으로 합의된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대책'.

오후 9시 이후 원칙적 심야 배송 금지, 택배 분류작업 별도 전담 인력 담당, 최대 작업시간 주당 60시간·하루 12시간 제한 등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책이 담겼는데요.

택배노조는 이 대책에 서명한 지 불과 5일 만에 택배사들이 합의를 어겼다며 파업을 검토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 합의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트 배송 노동자들인데요.

마트 배송 노동자는 마트에 소속된 근로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사업자'에 불과합니다.

택배 노동자와 마트 배송 노동자 모두 각각 택배사와 물류사에 소속돼 있지만 법이 규정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근로기준법과 같은 노동 관계법 보호를 받는 데 제약이 있습니다.

또한 마트 배송은 택배업으로 분류돼 있지 않고, 배송 노동자는 마트 또는 물류사와 계약에 따른 위수탁 구조여서 이번 대책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경기 고양시에서 국내 대형마트의 60대 배송 노동자가 근무 중 사망했는데요.

고인은 평소에 술, 담배조차 하지 않았고 지병도 없이 건강했던 터라, 유족과 노조는 "고인이 일요일에도 일을 하다가 사망했다"며 '과로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운송사는 배송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란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실제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는 운송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것뿐이기 때문에 처우 개선 합의는 운송사와 배송 기사 간의 문제"라고 말했는데요.

정민정 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일부 업체의 경우) 배송상품을 담는 노동자는 직고용 노동자인 반면 배송 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라며 "취급하는 상품은 똑같은데 배달하는 사람만 개인사업자인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마트 배송 기사는 대형마트 물건을 (곧장 고객에게) 전달하는 만큼 (쇼핑몰과 고객의 중간 매개 역할인) 택배기사보다 더욱 '근로자'에 가까움에도 어떠한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는데요.

현재 마트 배송 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마트노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전원이 주 6일, 코로나19 이후 평균 하루 11.2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중량물 제한도 모호해 배송 기사들의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인데요.

중량물 제한 품목 배달 인센티브는 겨우 건당 1만 원.

국내 한 대형마트는 생수, 쌀, 절임 배추와 같은 상품에만 중량물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중량물 제한 품목이 아닌 상품을 여러 개 주문할 경우인데요. 일례로 제한 품목이 아닌 계란을 몇백 판씩 주문할 경우에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대형마트 관계자는 "중량물 제한 품목의 경우 마트에서 가장 무거우면서 많이 팔리는 상품으로 선정한 것"이라며 "(이외 품목의) 몇백 개 주문은 현실적으로 (인센티브를 받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는데요.

심지어 마트 배송 노동자는 산업재해 신청이 불가능해 배송하다 다쳐도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마트노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최근 2개월 내로 사고로 다치거나 질병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80%나 됐는데요.

이 중 '지속적인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경우는 56.9%에 이르렀지만 그에 합당한 치료는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빛나라 산재전문변호사는 "배송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 형태로 근무하는 것이 열악한 처우의 근본 원인"이라며 "이 관행을 바꿀 수 없다면 개인사업자라고 하더라도 노동자에 준해 보호받을 수 있는 법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택배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는 만큼 마트 배송 노동자의 과로사를 막을 수 있는 대책도 빠르게 마련되길 바랍니다.

kir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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