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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되나요] 하나 마나 한 점자표기…시각장애인은 어떡하라고 01-15 08:00

(서울=연합뉴스) 음료나 의약품에 있어야 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그러나 점자 부실 표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식품의 점자 미표기도 문제지만, 의약품의 경우 약물 오남용이나 건강상의 문제와 직결돼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2019년 11월 한국소비자원은 국내 의약품의 점자표시 현황 파악을 위한 조사를 했는데요. 생산실적과 안전상비의약품 고시에 따라 선정된 58개 품목 중 점자표시가 돼있던 건 단 16개뿐.

그마저도 11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점자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졌는데요.

지난해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출한 조사에서도 전체 의약품 4천751개 중 점자가 표기된 약품은 단 94개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지난해 11월 식약처와 대한약사회가 점자표기약 94개에 대해 가격표 부착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는데요.

전문가들은 점자 표기가 필수가 아닌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선임연구원은 "현재 의약품 점자 표기는 권장사항인데, 점자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법이 개정돼야 한다"며 "개정이 안 되다 보니 의약품 제조 회사에서는 본인들이 할 의무가 없고,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대한 규칙 제 69조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제품의 명칭, 품목허가를 받은 자 또는 수입자의 상호 등은 점자 표기를 병행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점자 표시가 '필수'가 아닌 '권고 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업 자체의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편 의약품 제조업체는 점자 표기가 어려운 이유로 재정적 문제를 꼽았는데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의약품 점자표기 제작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생산라인이 필요한데, 이때 발생하는 설비투자 비용과 점자 검수 인력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점자의 필요성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훈 연구원은 "이미 점자를 표기하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생산 대상을 늘려가는 추세"라며 점자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점자 표시 의무화에 관한 논의는 16대 국회 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되고 있는데요.

그때마다 발의에 그칠 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과 9월,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각각 발의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도 통과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김예지 의원은 "모든 국민은 안전한 의약품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권리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침해될 수 없다"며 "정부와 기업 모두 구체적인 의약품 점자표기 가이드라인 제시와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선제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보여주기식의 단발성 장애인 정책이 아닌, 정말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kir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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