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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페셜] 환경건축가 김원의 '종로愛서'① 역관 후손 고희동 화백의 가옥을 가다 11-30 17:32


서촌 재개발 반대 선봉 김원 건축가가 바라본 서울의 중심, 종로
"종로 문화재는 600년 역사도시의 살아 있는 증거"

[※ 편집자 주 = 코로나19가 국내에 창궐한 지 10개월이 다 돼 갑니다. 하반기 대유행의 우려에 따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랜선 여행과 주변 근거리 문화재 탐방에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문화재청, 종로구와 함께 취약계층의 문화유산 향유를 위해 종로 문화재 골목 랜선 여행 콘텐츠 시리즈를 총 6편에 걸쳐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환경건축가 김원(78)의 종로 사랑은 특별하다. 40여 년 동안 옥인동 주민으로 살아온 그가 서촌 지킴이와 종로 문화유산 알리미로 활약한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특히 이명박 정권 시절 서촌 재개발을 막아내 종로의 여러 문화유산을 지켜낸 사실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또한 환경단체 내셔널트러스트 활동(대표, 이사장 등 역임)을 통해 헐릴 위기에 있던 이상의 집을 지켜낸 이야기, 박노수 화백 작고 후 박 화백의 저택을 종로구립 미술관 지정에 선정되게 한 이야기 등 종로의 문화재와 관련한 예술인들과도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건축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85년 일본 가지마 출판사 선정의 '세계 현대 건축가 101인'에 뽑히기도 했던 그를 현재 국내 생존해있는 건축가 중 첫손가락에 꼽는데 이견이 없다.

통일교육원, 코엑스, 독립기념관, 예술의 전당 국악원, 태백산맥 기념관, 박완서 문학관, 미당 서정주 문학관, 남양주 종합촬영소 등을 설계해 우리나라 건축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특히 그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와 함께 1천여 대의 브라운관을 세워 비디오 작품을 선보인 '다다익선'의 설계자라는 사실은 최근에 밝혀진 일이다.

그런 그가 종로의 문화유산에 깊이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종로는 600년 역사 도시 서울의 상징입니다. 서울이 첨단도시, 디자인 도시를 표방했다 하더라도 600년 역사 도시라는 관점에서 개발할 곳과 보존할 곳을 확실히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서촌과 북촌이 있는 종로가 그 마지막 보루입니다."(김원 건축가)

◇ 역관 후손, 프랑스어 배우다가 서양화와 만나다

김원 건축가가 말하는 서촌은 조선의 중흥이 시작된 곳이란다. 옥인동, 누하동, 청운동 등 서촌 일대에는 대대로 의관이나 역관, 기술자들이 몰려 살았다. 특히 역관들은 외교사절을 따라다니며 일찍 서구문화를 접해 높은 안목과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역관들은 비록 중인의 신분이었지만 수준 있는 문화적 소양을 갖고 위항문학(委巷文學:조선 후기 서울을 중심으로 중인ㆍ서얼ㆍ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에 의해 이루어진 문학양식)을 꽃피웠다. 그 역관의 후손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春谷) 고희동(1886~1965) 화백이다.

"춘곡은 대대로 역관의 집이었던 가문의 후손이며 그 자신도 역관이 되고자 14살 때부터 프랑스어를 배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양화를 접하게 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미술관이 된 고희동 가옥 역시 그가 일본에서 유학한 후 직접 설계하고 개축한 작업실이자 살림집이었습니다"(김원 건축가)

김원 건축가가 특히 강조하는 춘곡 고희동 화백에 관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종로에 서울시 문화재 33호로 지정된 '홍건익 가옥'이 있는데 이곳은 제대로 말하면 '5대 역관 중인의 집'이라고 해야 합니다. 홍건익은 이 집을 1930년대 샀던 사람일 뿐입니다. 이 집은 고희동 화백의 5대조가 대대로 살아온 유서 깊은 집입니다. 문화재 이름을 '5대 역관의 집' 이런 식으로 바꿨으면 합니다." (김원 건축가)

서촌의 중심 계층이었던 역관의 후손 소년 고희동을 역관으로 양성하려 했던 선조들의 의지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5대 역관의 집을 홍건익 가옥으로 명명한 것은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근대 초기 한국주택 양식 고스란히 보전한 고희동 가옥

고희동 가옥은 춘곡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에 지은 목조 한옥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1900년대의 느낌이 물씬 나는 마당부터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집으로 이 집의 설계에는 고희동 선생의 일본 유학 생활 경험이 녹아있다.

문화재 지정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선생의 집은 고희동 선생이 41년간 살던 집이자 화가 고희동의 작품세계가 이루어진 장소로 2002년 헐릴 위기에 처했다. 선생이 집을 팔고 동대문구로 이사를 한 후 다 쓰러져가는 상태로 방치됐기 때문이다.

이에 북촌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나서 철거 위기를 지켜냈다. 특히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등 시민단체가 발 벗고 나서 보전운동을 펼쳤고 등록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었단다.

집 안에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그곳을 지키며 살았던 이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하여 고희동 가옥은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시민 모두의 소중한 문화재가 됐다.

"종로는 왕궁부터 시작해서 그 주변에 여러 가지 활동과 주거생활이 함께 공존했던 곳입니다. 왕궁이 자리 잡게 된 풍수적, 자연적인 요인까지 합쳐져 있죠. 자연과 인문학적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서울이 종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역사의 갖가지 켜가 종로에는 다 있습니다."(김원 건축가)

seva@yna.co.kr

<내레이션 : 유세진 아나운서 ys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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