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하단 메뉴 바로가기
배너
배너
[Y스페셜] 서희의 고장 이천을 가다 01-08 13:41

(이천=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경기도 이천은 고려시대 문신이자 외교관인 서희(942~998)의 고장이다.

서희는 알려진대로 거란족의 내침 때 서경 이북을 떼어주고 강화를 맺자는 당시 조정의 방안을 끝까지 반대한 후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철수시킨 외교의 달인이다.

시내 중심지에 서희로라는 이름을 붙이고 동상을 세웠을 정도로 서희에 대한 이천 시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천시내에서 서희의 발자취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천의 명승지와 명물들을 만날 수 있다.

◇ 서희의 일생을 담은 서희테마파크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서희테마파크는 서희의 일생과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면 가장 먼저 다양한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희의 탄생과 성장을 조각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들이다.

이천의 지명 역시 서희와 관련이 깊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 이천의 복하천에 이르렀으나 홍수로 인해 건널 수 없게 되자 서목(서희의 숙부)이 인도해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쟁에 승리한 왕건이 이 지역에 '큰 강을 건너 공을 세우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뜻의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섭대천에서 '이로울 이(利)'자와 '내 천(川)자'를 따서 '이천'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서희가 거란군과의 협상을 통해 회복한 강동 6주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역사상 유례없이 침략군에게 협상을 통해 큰 이득을 얻었을 뿐 아니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외교적으로 영토를 회복하고 나라를 지킨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서희는 지금도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가로 평가받고 있고, 그의 지혜와 담대함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따르고 배워야 할 가르침이 되고 있다.

◇ 이천 9경에도 서려 있는 서희의 발자취

이천 구경을 제대로 하려면 '이천구경(九景)'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 도드람산과 효자의 전설이 얽힌 삼형제바위, 설봉호수와 산이 함께한 설봉공원, 수령 500년이 넘는 수천 그루의 산수유나무 군락지가 일품인 산수유마을,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꿈을 펼쳤던 백제 석성 설봉산성, 용 모양을 한 천연기념물 제381호 반룡송, 단청이 아름다운 애련정, 노성산 말머리바위, 전통가마와 도예공방이 있는 이천도예촌 등이 이천 9경이다.

이천9경 중 하나인 애련정에는 조선시대 이천 부사였던 이세보가 영의정이었던 신숙주에게 정자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숙주는 정자가 있는 저수지인 안흥지에 피어있는 연꽃을 보고 염계 주돈이의 시 '애련설'에서 따와 애련정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안흥지 역시 서희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이곳에 그를 기리는 '향현사'라는 사당이 조선 명종 때 세워졌다.

향현사는 선조 때 설봉산 밑에 설봉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확장 이전돼 현재 안흥지에는 그 흔적만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서희를 기리던 사당이 옮겨졌다는 설봉산 자락의 설봉서원은 조선 시대 유학을 장려하고 유생의 교육을 담당했던 곳이다.

지금도 이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수업을 진행하는 등 교육과 배움의 장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이천 도자기의 산실 예스파크

이천에는 이천세라피아라는 이름의 세계도자센터가 있다. 이곳 박물관과 전시관에서 세계 18개국 32명 작가의 도자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흙이 가진 편안함으로 일상에 여유를 주는 것이 도자기의 매력이다.

이천 도자기의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예스파크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예스파크는 도예가들이 모여서 살 수 있도록 만든 마을이다. 동네 이름도 도예가의 '예'자를 따서 만들었다.

이천 도자기 역사의 산증인이며 2010년 유네스코 '도자명장'에 선정되기도 한 도예가 엄기환(73)명장은 "이천은 조선후기 부터 도공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큰 규모를 형성했다"며 "1883년 일본에 의해 도자기 공장이 폐쇄됐고 해방 후에 도예인들이 이천 쪽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는데 그들이 이천으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는 이천에 칠기 공장이 3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마의 연료인 나무를 구하기 쉬우니까 이천으로 모이게 됐다는 것이 엄 명장의 설명이다.

1959년부터 도예를 시작했다는 엄 명장에 따르면 이천은 점토와 가마의 연료가 되는 나무, 교통의 요지인 지형적 이점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곳이다.

서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이천은 역사와 멋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쌀쌀한 겨울에 풍성한 이야기로 가슴을 가득 채워주는 이천으로의 여행은 뭇 여행자들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할 것이다.

seva@yna.co.kr

광고
배너
배너
광고
AD(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