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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페셜] 임정로드를 가다…난징ㆍ충칭의 독립운동 숨결 08-30 10:41

(난징, 충칭=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난징은 모두 네 번의 정부가 들어섰던 역사적인 곳이다. 특히 중국인들에겐 슬픈 상흔의 도시이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난징을 침략한 일본군은 무려 30만 명에 가까운 중국인을 학살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항주 시기를 거친 후 난징 근처 진강에 청사를 마련했다. 난징에 있는 국민당 정부와 교섭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난징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도 의미가 크다.

중국 국민당의 도움 없이는 독립운동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내에는 김구 주석이 국민당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장제스를 만나러 온 장소인 중앙반점이 아직도 있다.

상하이를 떠나 일본군에 쫓기던 임시정부는 이곳에서 중국 국민당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내 군사부터 자금 지원까지 후원받게 된다.

일반인의 눈에는 그냥 오래된 호텔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보면 유서 깊은 장소다.

난징시는 총독부 건물이었던 곳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엄청난 규모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그 사진 속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 본명을 버리고 중국 육사에 진학한 강인수 선생

국민당 정부와 긴말한 인연이 있는 독립유공자 강인수(1869-1932) 선생의 외동딸 양뀌룽 여사를 난징 시내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강인수 선생은 청년 시기에 친구들을 따라 중국에 망명,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선생은 또 본명을 버리고 중국인으로 위장한 뒤 중국 육군사관학교인 항포군관학교에 입교해 중국인 장교가 됐다. 그 후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에 함께했다.

양 여사는 어머니에게 배웠다는 노래인 도라지 타령을 불렀다. 한국말을 배우지 못해 미안하다면서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강경생, 양귀용(양뀌룽)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의열단에 계셨었는데 일본군에 쫓겨 중국으로 오신 후 성을 양씨로 바꾸셨다"

(양뀌룽 여사)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인으로 위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인 장교가 됐던 선생은 어쩔 수 없이 공산당과의 내전에도 참여해야 했다. 임시정부 광복군을 돌보면서도 중국 국민당의 명령에 따라 대만 타이베이로 이주하게 됐는데 그것이 아버지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대만으로 가시면서 곧 우리를 데리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중국에서 계속 아버지를 기다리셨지만 못 만났다. 나중에 아버지가 사람을 보내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중 수교 이후 신문 기사를 보고 알았다. 아버지가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양뀌룽 여사)

결국, 가족은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어머니는 공산당 정부 아래서 딸을 중국인으로 키워야 했다.

여덟 살이었던 딸이 일흔이 될 때까지 60년 세월이었다.

대만에서 장교로 은퇴한 아버지는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상했지만 끝내 가족을 찾지 못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한중 수교가 이뤄진 뒤에 무덤에서 만난 셈이다.

양뀌룽 여사의 노래는 곧 이들의 할머니였고 어머니였다. 노래는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사랑했던 남편을 기다리는 사모곡이었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희생해야만 했던 이들의 사연이 애달프다. 조국은 독립을 맞이했지만, 이들의 슬픔을 알아주지 못했다.

◇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처 충칭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본격적인 이동 시기를 맞아 도시들을 순회한 뒤 충칭에 도착하게 된다.

중국 충칭은 산과 강, 구름에 둘러싸여 안개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다.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충칭의 한 주택가에 방문객들이 붐비는 곳이 있다.

임시정부 27년의 긴 여정 속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현판을 걸었던 충칭 연화지 청사다. 긴 세월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지금까지 깔끔하게 보존돼 있다.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1945년 1월부터 8월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이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청사는 1호에서 5호까지 총 다섯 개의 건물로 구성됐으며 외교부와 재무부 등 정부의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에서 치열했던 투사들의 삶을 추억해 본다.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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