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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페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멍에…"가족은 희생 감수" 08-29 14:24

"임정요원 후손들, 타국서 이름ㆍ국적 감추고 살아와"

(충칭ㆍ파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중국 충칭에서 만난 유수동씨는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진짜 이름과 국적을 감추고 살아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유 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유진동 선생의 후손이다.

그는 "남편이나 아버지가 임시 정부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당시 그 가족들은 방치되거나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방 후에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길 없던 이들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유 씨와 같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그토록 원하던 광복이 된 이후에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급작스럽게 맞은 광복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국에 생계의 터전이 없어서 중국에 남게 된 경우도 많았다.

독립운동가들은 대체로 가정을 제대로 돌볼 형편이 안됐다. 중국에 남은 후손의 삶을 짓누르는 고달픔의 멍에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을 과거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 '대동단결선언문' 작성한 조소앙의 생가를 가다

경기도 파주에는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이바지한 조소앙(1887-1958) 선생의 생가가 있다.

파주에서 출생한 조소앙 선생은 일찍이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며 임시정부 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

조소앙 선생의 손자인 조인래씨는 선생에 대해 "본명은 조용은인데 밀정들이 자꾸 쫓아다니니까 이름을 바꿨다"며 "1917년에 작성하신 대동단결선언문은 조국을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꾸기 위한 선언이며 불멸의 주권론이라고도 불린다"고 설명했다.

일제에 구속된 국내 동포를 대신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그 책임을 감당하자던 선생의 제안이 임시정부 수립으로 발전했고 통일국가를 수립해가는 기초가 됐다는 것이다.

조 씨는 그의 할아버지가 초안을 작성했다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꺼내보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3.1운동 뒤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의 헌법이 마련됐고 이것이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가 됐다. 이후 임시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독립된 정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외무부 장관 신분으로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조소앙 선생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피력하기 위한 활발할 활동을 펼쳐나가게 된다.

외국에 흩어져 있던 저명한 인사들이 모여 대한민국 최초 독립선언서를 작성할 때 독립운동을 위해 '일가를 희생하라'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당시 그들의 결연한 다짐을 담아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소앙 선생은 부모는 물론 형제, 자매와 자식들까지 독립운동에 참여하도록 해 일가를 희생하는 본보기를 보였다.

◇ "300만 동포여,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하오리다!"

조 씨는 노트북을 꺼내 녹음 파일을 실행했다. 조소앙 선생의 육성이었다.

"여러분, 300만 동포여! 나 조소앙은 여러분께 맹세합니다. 우리나라를 독립국으로 하오리다! 아기마다 대학을 졸업하게 하오리다! 어른마다 투표하여 정치성 권리를 갖게 하오리다! 사람마다 우유 한 병씩 먹고 집 한 채씩 가지고 살게 하오리다! 대한독립 만세! 임시정부 만세!"

혼자만이 아니라 온 가족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독립운동가들의 다짐은 독립운동에 불을 지피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 가족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의 서곡이었다.

<내레이션 : 유세진 아나운서>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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