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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페셜] 바다와 노을 그리고 바람이 매력적인 도시, 화성 11-26 18:21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환상의 여행지…역사유적도 한가득

(화성=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경기도 화성은 서해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관문이 되는 도시다. 배를 타고 화성에 들어오면 시원한 바다 풍경이 방문객들을 맞아준다. 변화무쌍한 바다, 아름다운 노을, 불어오는 바람이 매력적인 도시다.
바다의 매력 덕분에 화성에서는 길 닿는 곳 어디든 활기가 넘친다.

또,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어 자연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수도권 시민의 휴식처로 사랑받는다.

'화성의 명소' 하면 바다 물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 제부도를 빼놓을 수 없다.

하루 두 번, 바닷길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신비의 섬이다. 또한, 석양이 아름다운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바다 주변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흥미로운 조형물도 설치돼 있다. 바다로 향하는 계단 길이 여행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조의 애절한 사부곡의 현장, 용주사

화성의 여러 여행지 중, 먼저 도착한 곳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인 용주사다. 바닷바람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새 소리며 자연의 소리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용주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고찰을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재건한 곳이다. 이곳엔 남다른 사연이 있다고 한다.

정조 임금의 효심이 깃든 장소인데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새로 만들며 이 절을 다시 크게 지었다고 한다.

용주사의 구석구석에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효심이 어려 있다.

◇ 조선을 사랑한 원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의 용기

1916년 한국에 온 캐나다 국적의 영국인, 스코필드 박사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산증인이었다.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바랐던 한 사람이었다.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지원하고 기록하며 일제의 만행을 규탄했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에 도착한 일본 군경들은 마을 주민 30여 명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한다.

그리고 증거 인멸을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지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해방 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할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제암리 교회 터에 현재 건물교회를 새로 짓고, 순국기념관을 세웠다. 스코필드 박사가 바로 충격적이었던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에 알린 주역이었다.

당시 제암리 교회에는 독립운동가가 권사로 있으면서 비밀조직을 결성해 항일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치열했던 독립운동을 벌였던 화성 지역이다. 그랬던 만큼 일제의 보복도 잔인했다.

순국기념관을 방문한 여행자들은 제암리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보석 같은 화성의 노을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여행자들에게 화성여행은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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