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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풍향계] '난파선 선장' 김병준, '계파갈등' 파고 넘어 순항할까 07-22 15:08

[명품리포트 맥]

6월 지방선거 참패 후 '김병준 비대위'가 출항할 때까지 꼬박 한 달.

자유한국당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련만 서로를 탓하느라 허송했습니다.

편을 가르는 내용의 휴대전화 '메모'는 기름이 됐고, 가만히 있다가는 자칫 '목이 날아갈까' 우려가 커지면서 계파갈등은 활화산처럼 타올랐습니다.

상황을 수습할 대안도, 나서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 돌고돌아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난파선의 선장으로 결론났습니다.

김 위원장은 보수의 가치를 다시 세우고 외연을 넓혀 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김병준 /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한국의 보수 정치권이나 중도정치권, 또 자유한국당은 그런 가치를 점유하는 데 있어서 부진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총리 후보에 올랐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안상수 / 자유한국당 의원> "소위 친박들이 '그렇게 거부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는 것은 맞고요. 그런 가운데 우리가 약간 외연을 넓혀 보자…"

어렵사리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의 성공과 실패를 예단하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성패가 엇갈린 과거의 비대위 모델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정도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가깝게는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발족한 김종인 비대위가 대표적인 성공모델로 꼽힙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 출범을 이끈 '적장'이라는 점에서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만큼 애초부터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출범 석달 만에 치러진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원내 1당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성공의 배경에는 당시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표의 전권위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문 대표의 당권 포기는 김 위원장이 이해찬 의원을 비롯한 친노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할 만큼 강력한 인적쇄신을 단행할 수 있었던 힘이 됐습니다.

앞서 2011년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 체제 역시 성공사례입니다.

2010년 지방선거 참패와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논란 후 사퇴, '디도스 파문'까지 악재가 이어진 상황에서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까지 바꾸는 파격적인 혁신에 나섰습니다.

현역의원 25%를 공천에서 배제했고, 이준석·손수조 등 이른바 '박근혜 키즈'를 영입해 인적쇄신과 세대교체 이미지를 심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친이명박계 인사들이 공천에서 무더기 탙락해 정치 보복 논란이 일었지만 비대위의 쇄신 조치는 총선과 대선 승리로 귀결됐습니다.

두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총선 직전, 강력한 인적 청산과 인재 영입을 통한 물갈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했다고 기억할 만한 비대위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당장 2016년 20대 총선 직후에는 비대위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였는데요.

대부분 진통 끝에 '식물 비대위'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을 영입해 비대위를 꾸렸지만 혼란을 수습할 만큼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출범한 인명진 비대위 역시 높은 혁신 의지와 달리 이렇다할 성과없이 막을 내렸습니다.

'친박청산'을 목표로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과 사사건건 충돌했지만 조직적 반발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한 겁니다.

총선 직후 리베이트 의혹 사건이 불거진 국민의당 역시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의 비대위 체제가 꾸려졌지만 '관리형'에 그쳤습니다.

당 내부 인사가 주도한 비대위는 감동도, 혁신도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출항 일주일을 맞은 '김병준호'가 순항할 수 있을지, 암초를 만날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비대위 활동 범위와 기간조차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장은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는 당의 혁신을 강조하며 '전권형 비대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박계는 전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관리형 비대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칫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상대에 의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입니다.

숫자로만 따져보자면 여전히 당내 친박계 세력이 더 큽니다.

힘을 실어줄 세력이 부족한 가운데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당협위원장 교체권'을 앞세웠지만, 분명 공천권과는 다릅니다.

다음 총선까지 1년 9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당내 인적청산요구가 강렬한 것도 아닙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보수의 '가치정립'을 앞세운 것도 어찌보면 이같은 고심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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