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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족집게] '분단체제의 산실' 판문점, 65년만에 평화의 상징될까 04-22 09:00

[명품리포트 맥]

[앵커]

닷새 후엔 세계인의 이목이 판문점으로 모이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판문점 남쪽 지역의 평화의 집에서 열리기 때문인데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의 산실이 되는 셈인데요.


역사의 현장이 될 판문점의 역사를 고일환 기자가 여의도 족집게에서 짚어보겠습니다.

[기자]

판문점은 서울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져 있습니다.


원래는 허허벌판위에 초라한 초가집 3채만이 자리잡고 있었던 널문리라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곳이 뉴스의 초점이 됐습니다.


1951년 10월 널문리에 설치된 천막에서 유엔군과 북한군의 연락장교 접촉이 시작됐습니다.


판문점이란 명칭도 중국이 널문리 주막을 한자로 표기한데서 나왔습니다.


<대한뉴스> "유엔군과 공산군은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에 조인했다. 그러나 휴전은 전쟁의 종식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휴전일 따름이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엄청난 희생만을 몰고 왔던 전쟁…그것은 우리 역사상 씻을래야 씻을 수 없는 최대의 비극이었다."


휴전 협정 이후 판문점은 유엔과 북측의 공동경비구역으로 결정됐습니다.


동서 800m, 남북 600m 규모의 판문점.


판문점은 155마일 휴전선으로 갈라진 남북이 유일하게 접촉할 수 있는 장소로 사용됐습니다.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뤄졌습니다.


<국립영화제작소> "판문점 서쪽 언덕에 올라서면 다리 한가운데 휴전선이 걸려있다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굽어보인다. 휴전이 조인되고 이 다리에서 양측 포로들이 교환됐다. 이때 대전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됐던 딘 소장도 이 다리를 넘어 돌아왔다."


판문점은 대화를 하기 위해 만든 장소인데요.


유엔군과 북측의 군사정전위원회도 T2로 불리는 공동경비구역내 파란색 임시가설건물에서 열렸습니다.


<국립영화제작소> "유엔 측은 남쪽문을 통해서에 들어오고 공산측은 북쪽문을 통해서 들어온다. 회담은 제의한 측의 발언으로 시작되는데 한쪽 대표가 발언하면 그 말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통역된다. 판문점에서의 회담은 공박과 반박만이 되풀이 될뿐 어떤 합의나 결론없이 끝내는 것이 거의 상례화돼왔다."


합의나 결론없이 공박과 반박이 되풀이 됐던 군사정전위원회.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판문점에선 충돌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6년에 발생한 도끼만행 사건입니다.


<대한뉴스> "8월18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서 노무자들의 작업을 경비하던 유엔군 경비병들에게 북한 괴뢰 경비병 약 30명이 계획적으로 기습해와서 악랄한 살인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북한군은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경비병 9명에게 중경상을 입혔습니다.


이 사건으로 공동경비구역이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됐습니다.


원래는 공동경비구역은 문자그대로 휴전협정당사자들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담장 사이에 폭 50cm 높이 5cm의 콘크리트 판이 설치돼 남북간 경계가 표시됐습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로 남쪽으로 넘어오게 될 경우에도 이 콘크리트 판을 넘어와야 합니다.


남북간 일촉즉발의 위기는 얼마전에도 발생했습니다.


<북한군 귀순 관련 기자회견> "다시 상단의 화면을 보시면 우리는 사격을 가하는 북한군 병사한명이 추격후 군사분계선을 몇초간 넘었다가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북한군 하전사 오청성 씨가 판문점을 통해 귀순할 당시, 북한군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왔습니다.


남북의 물리적 충돌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판문점은 남북 긴장해소의 장소로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1972년 남북간 연락사무소가 설치돼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뉴스>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경제문제를 다루기 위한 1차 남북한 경제회담이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1985년에는 남북 이산가족들이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과 평양에서 3박4일간 헤어진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 천마리를 트럭에 싣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 대통령>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의 길을 여는 확고한 이정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65년동안 끌어온 정전체제 끝내고 종전선언 거쳐 평화협정의 체결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결로 나가야 한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선 문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될지 여부가 결정됩니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결의 길을 걸어간다면 판문점은 비극의 장소가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을 전망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족집게'였습니다.

연합뉴스TV : 02-398-4441(기사문의·제보) 카톡/라인 jebo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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