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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이슈] '즐거운 사라' 필화로 우울증 겪다 떠난 '광마' 마광수 09-06 09:19

<출연 : 연합뉴스TV 스포츠문화부 장보경 기자>

[앵커]

즐거운 사라로 널리 알려진 마광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가 어제 숨진채 발견 돼 충격을 줬습니다.

필화사건으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 스포츠문화부 장보경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장 기자, 어서 오세요.

어제 오후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는데요.

자세한 소식을 좀 전해주시죠.

[기자]

네, 어제 오후 1시 51분께였는데요.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이웃집에 살고 있는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베란다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발견이 됐고 집에는 유산과 시신처리를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A4 1장짜리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이 유서는 지난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고인은 1985년 결혼했다가 5년 뒤 이혼했고 자녀는 두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모친이 사망한 후에는 가사 도우미와 함께 지내왔는데요.

도우미가 정오에 집을 비운 사이, 숨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앵커]

여러 정황상 마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우울증을 앓아 왔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로 실형을 받는 등 필화사건을 겪은 뒤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마 전교수가 자주 했던 말 중에 하나는 '억울하다', '답답하다' 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소설 즐거운 사라보다 더 거침없는 다른 작품들이 있었는데,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라는 억울함과 답답함을 내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필화 사건을 겪은 후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빠졌고 우울증으로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해왔다고 합니다.

또 지난해 8월 정년퇴임을 했는데, 필화 사건으로 해직을 당하면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명예교수도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른 허탈함도 많이 토로해왔다고 합니다.

[앵커]

장 기자가 언급한대로 마광수 교수는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대중에게 각인이 되었는데요.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기자]

아마 시청자 여러분 역시 '즐거운 사라'는 익숙할 것입니다.

즐거운 사라는 사라라는 여대생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주된 내용입니다.

1992년 10월 마광수 교수는 강의 도중 경찰에 연행돼 구속됐습니다.

당시 죄목은 음란문서 유포였는데요.

바로 이 음란문서로 분류 된 것이 소설 즐거운 사라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마교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요.

이 책 즐거운 사라는 문화부가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마교수는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 됐지만 소설 즐거운 사라는 현재까지도 판매 금지 상태입니다.

즐거운 사라 사태는 당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해 논의를 촉발시키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외설스러운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저자가 구속된 세계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 책이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있길래 이런 논란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기자]

여성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이 작품에 대해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안 전 후보자는 1994년 2월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제조 혐의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의 수준에 미달하는 음란물"이라는 감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당시 검찰과 변호인 측이 중립감정인으로 공동 선임한 안 전 후보자는 이 작품에 대해 "통상적인 성인 독자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예술적 가치가 없는 음란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는데요.

특히 '문학적, 예술적, 정치적, 사회적 가치가 없는 법적 폐기물', '하수도의 무대에 머물러야 마땅한 작품'이라는 격한 단어를 쓰며 혹평했다고 합니다.

[앵커]

사실 마광수 교수는 사실 오랫동안 저작활동을 해온 인물인데요.

즐거운 사라 논쟁에 다른 부분이 함몰된 느낌입니다.

마 교수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데요?

[기자]

네, 마광수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소설이 아닌 시에 대한 연구였는데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우리 나라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해 가장 정통한 인물이 마광수 교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마 전 교수는 천재로 불리며 28살에 홍익대 교수로 처음 강단에 섰고요.

1984년부터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 부임했습니다.

하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즐거운 사라 사건이 터졌습니다.

마광수 교수의 대표작은 1990년대 소설 '광마일기'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이 있는데요.


필화 사건 이후에도 작품활동을 했지만 자기검열 탓에 과거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여 사건 이전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남아있습니다.

[앵커]

마 교수는 사실 즐거운 사라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에 많이 휘말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자]

네, 2007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비롯한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됩니다.


당시 마 교수는 항소하지 않았는데요.

또 같은 해 제자들의 시를 거의 그대로 본인의 시집에 실어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는 자신의 원작을 각색한 연극 <가자, 장미여관으로>의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사람 중에 나보다 야한 작가나 시인이 없는 게 안타깝다"고 밝혀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본인을 전과 2범에 감옥을 가고 학교를 두번이나 잘렸다고 소개한 마광수는 "제2의 마광수가 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고 언급했습니다.

[앵커]

대담한 성담론을 꺼내놓은 마 교수의 작품들의 의의를 따져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자]

마광수 교수가 생각하는 문학의 가치는 물론 좀 남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본능적인 욕망과 욕구를, 문학으로 상상하게 해서 읽는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특히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에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이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합니다.

또 2013년에 즐거운 사라를 새로 펴내면서 적은 저자 소개글을 보면 그가 스스로 생각했던 자아가 어떤 것이었는지 대강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죽어도 '나이값'은 안 하겠다는, 그래서 마음만은 언제나 '야한 상태'로 있겠다는 괴짜 시인이자 소설가, 대학교수라고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항상 자유인으로 살아가며 '이중적 위선'에 맞서 싸우는 문화운동가"라고 적혀있는데요.

저는 이 지점이 마 전 교수가 항상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네, 그렇군요.

문단의 이단아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던데,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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