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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족집게] 불붙은 '여의도 공천전쟁'…"너죽고 나살자" 02-21 09:00

[명품리포트 맥]

[앵커]

총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여의도에서는 공천 전쟁이 살벌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을 대표해 본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공천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생결단의 계파 싸움이 펼쳐지는 겁니다.

심지어 선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 계파에게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4년마다 펼쳐지는 공천전쟁, 여의도 족집게에서 짚어봤습니다.

[기자]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공천장에 도장 못 찍어준다", "당 대표라도 공천을 안 줄 수 있다".

요즘 새누리당에서는 결의가 느껴지는 말들이 쏟아집니다.

그만큼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겠죠.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자리를 걸고라도 각자의 공천룰을 지켜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공개 회의에서 서로를 성토할 정도로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청원 / 새누리당 최고위원> "'용납하지 않겠다'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됩니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공관위는) 독립기구요. 누구도 손댈 수 없어요."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 "똑같은 말 반복시키는데 공천관리위원회가 당헌당규에 벗어난 행위는 절대 제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서청원 / 새누리당 최고위원> "앞으론 그런 언행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그만하세요)"

친박계, 비박계 모두 "물러서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치는 건 이번 충돌이 단순히 공천 룰 싸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권력 투쟁.

특히 올해 총선은 대선까지도 맞닿아 있다는 데 방점이 찍힙니다.

대선후보 경선도 친박계와 비박계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총선 결과가 향후 대권 후보를 정하는 데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공천을 둘러싼 계파간 혈투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선거를 앞두고는 늘상 반복돼왔는데요.

그 시작은 '3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계파 정치가 절정을 이뤘던 그때는 사실상 '보스의 낙점'이 곧 공천이었기에 간택을 받기 위한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습니다.

'3김 시대' 이후 '절대 권력자'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권력이 분산되면서 공천 지분을 둘러싼 계파간 '대혈투'는 오히려 심화됐습니다.

이른바 '공천 학살', '공천 보복'이 반복된 겁니다.

학살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때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영남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당내 거물이었던 김윤환 의원 등 현역 43명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켰습니다.

한때 이 총재의 최대 후견인이기도 했던 김 의원 등은 배신감을 토로하며 당을 뛰쳐나왔고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지만 거의 대부분 여의도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있었던 2008년 18대 총선 땐 친이계가 공천을 주도한 가운데 친박계는 대거 학살 리스트에 올랐는데, 지금도 회자되는 당시 박근혜 대표의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이 이 때 나왔습니다.

<박근혜 /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2008년 3월)> "원칙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저는 믿고 싶었고 믿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시라…그 분들은 참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4년 뒤에는 친박계가 공천을 주도했고 이번엔 친이계를 포함한 이른바 비박계가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도 이때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당선됐는데 뼛 속 깊이 새겨진 공천 탈락의 기억이 '상향식 공천'이라는 철학을 확립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김무성 / 무소속 당선 직후(2008년 4월)> "저의 승리는 민의를 무시한 공천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천 싸움에서 드러나는 계파간 권력 투쟁은 야당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계파 패권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친노계'가 있습니다.

친노계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 경선에서 당시 한명숙 대표를 앞세워 비례대표와 수도권·호남지역 공천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이는 계파 갈등을 극대화시키는 요인이 됐습니다.

처음 도입한 '모바일 경선'을 위해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임의 투표자들을 선정했는데 조직력이 강한 친노진영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는 게 비주류의 주장입니다.

<박영선 /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공천 후유증으로 여의도가 시끄럽습니다. 공천은 늘 시끄러웠다고 덮기에는 이번은 상황이 조금 달라 보입니다. 공천 기준이 무엇인지 확실히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말 친노 수장격이었던 문재인 전 대표가 '현역 20% 물갈이' 등을 담은 공천혁신안을 밀어붙이자 4년 전 그때가 떠오른다며 반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며 잡음은 일단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지만 실제 공천 작업이 시작되면 야권도 언제든 시끄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여야는 계파 정치의 폐해를 없애겠다며 경쟁적으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왔지만 내 사람을 심으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 취지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4·13 총선을 앞두고도 역시 같은 약속을 했지만 똑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의도족집게였습니다.

연합뉴스TV : 02-398-4409(제보) 4441(기사문의), yje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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