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4·3 연좌제에 아버지 원망하기도…지금은 너무 그리워"

송고시간2023-03-31 16:51

beta
세 줄 요약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양성홍(76)씨는 4·3 당시 부모님이 본 피해와 이후 연좌제로 인해 자신이 겪어야 했던 설움을 이야기했다.

양씨의 아버지 양두량(당시 27)씨는 4·3 당시 도내 최대 수용소였던 주정공장에 수용됐다가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후 행방불명됐다.

요약 정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줄인 '세 줄 요약' 기술을 사용합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 본문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제공 = 연합뉴스&줌인터넷®
이 뉴스 공유하기
본문 글자 크기 조정

증언 본풀이 마당서 연좌제 피해 본 유족 5인 아픔 털어놔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한때는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생각에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4·3 유족 양성홍(왼쪽)씨가 사연을 말하고 있다. 2023.3.31 atoz@yna.co.kr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양성홍(76)씨는 4·3 당시 부모님이 본 피해와 이후 연좌제로 인해 자신이 겪어야 했던 설움을 이야기했다.

양씨의 아버지 양두량(당시 27)씨는 4·3 당시 도내 최대 수용소였던 주정공장에 수용됐다가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후 행방불명됐다.

양씨의 어머니는 남편이 도피하는 동안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 극심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좌제가 양 할아버지의 발목을 잡았다.

양씨는 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연좌제 때문에 안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공공기관에서 잠시 근무하기도 했으나 '신원조회에서 뭐가 나왔다. 그만둬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앞길이 막혔다는 생각에 한때 방황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더욱 열심히 살아왔다고 한다.

양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8월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양씨는 무죄 선고 후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 목이 너무 메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양씨는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때 아버지 나이가 고작 27세였다"며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처자식 두고 그 길을 떠나며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생각해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양씨는 "판결문을 받아 지난 아버지 제사 때 아이들에게 낭독하도록 했다"며 무죄 판결을 받아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양씨는 현재 4·3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강상옥(왼쪽)씨가 사연을 말하고 있다. 2023.3.31 atoz@yna.co.kr

강상옥(74)씨는 1949년 6월 주정공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당시 만삭이었던 어머니가 함께 주정 공장에 수용됐기 때문이다.

강씨의 아버지 강학반(당시 24)씨는 얼마 뒤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받아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에 의해 마포형무소 문이 열린 뒤 북한군에 끌려다니다 지리산에 들어갔고, 이후 담양경찰서로 귀순했다.

육군에 입대해 군 복무를 했고, 1960년대에야 제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까지 관공서도 가지 않고, 어쩌다 경찰을 마주치면 도망가버리곤 했다고 한다.

아픔은 연좌제의 사슬로 자식에게까지 이어졌다.

강씨는 농사 지으며 살다가 30세에 지인 권유로 방송국 입사 지원을 했는데,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있어서 떨어질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동생들이나 자식들도 문제가 있을까 싶어 경찰 친구에게 알아봐달라고 하니 '너희 아버지가 반공법으로 무기형을 받아 형무소에서 옥사한 것으로 돼 있다'고 했다.

이후 아버지의 군 복무 기록 등을 제출했고, 경찰에서 아버지 기록 뒤에 문제가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의견서를 덧붙여줘서 연좌제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씨의 아버지는 2021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강씨는 "재심으로 무죄 선고를 받아 이제야 정말로 신원조회니 뭐니 하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며 회한을 털어놓았다.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오희숙·오계숙·오기숙 세 자매가 사연을 말하고 있다. 2023.3.31 atoz@yna.co.kr

오희숙(86)·오계숙(79)·오기숙(77) 세 자매의 아버지 오화국 선생은 일제강점기 제주농업학교 항일운동에 연루돼 형을 살았고, 해방 후에는 1947년 3·1절 집회로 체포돼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

형을 살다가 가석방돼 고향에 돌아왔지만, 주변 사람들이 잡혀갔다는 소문이 돌자 하룻밤 머물고 바로 부산으로 몸을 피했다. 1948년 4월 2일이었다. 이후 부산에서 2년을 살다가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으로 떠났다.

오씨 자매는 "아버지가 떠난 다음 날 4·3이 나서 바닷길이 잠겼다"며 "그 후로 우리는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말 한마디 크게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 후 남아있는 가족들은 닦달에 시달려야 했다. 경찰이 찾아와서 오씨 자매의 조부모를 세워놓고 '아들을 찾아내라'며 헛총을 쏘기도 했고, 어머니는 경찰에 끌려가 물고문·전기고문을 당했다.

연좌제 고난은 사위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연좌제 때문에 직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올해로 22번째 열린 4·3 증언 본풀이 마당은 제주4·3연구소가 주최했다.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4·3 증언 본풀이 마당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31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4·3 증언 본풀이 마당이 진행되고 있다. 2023.3.31 atoz@yna.co.kr

atoz@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오래 머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