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이근형 "기타, 내 몸이자 인생…말보다 연주가 솔직"
송고시간2023-03-28 07:00
데뷔 36년 만에 첫 솔로 음반…"지금도 지미 페이지 같은 연주자 되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기타는 제 몸의 일부이자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넷플릭스를 시청할 때도 눈으로는 자막을 보지만 손으로는 기타를 치고 있을 정도지요, 하하."
기타리스트 이근형은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나 글로 쓰는 것보다 기타로 연주하는 게 표현이 더욱 솔직하게 나오더라"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예전에는 기타를 치는 '행위'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면 내 연주가 히스토리(역사)가 돼 유산이 되는 것을 보니 가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고도 했다.
이근형은 1984년 결성돼 1987년 데뷔한 하드록 밴드 '작은 하늘'로 음악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40년 가까이 기타 연주자로 활동하며 임재범의 '너를 위해'와 '고해', 김범수의 '보고 싶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등 전 국민이 애창하는 히트곡의 기타 세션을 맡았다.
그가 기타를 손에 처음 잡은 것은 70년대 국민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에 있던 기타로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독학으로 주법을 터득했다.
이근형은 "그 당시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레드제플린의 음악을 가장 열심히 들었고 지금까지 영향을 받았다"며 "이 나이가 되도록 (레드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 같은 연주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페이지는 사람 자체가 곧 음악"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최근 데뷔 36년 만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건 첫 솔로 음반 '얼론…낫 얼론'(Alone…Not Alone)을 발표했다. 10여년 전부터 작업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음악계 후배이자 제작사(에버모어) 대표인 권기욱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대중성과 무관하게 하고 싶던 음악을 풀어냈단다.
음반에는 질주하는 느낌이 청량한 '더 파이널'(The Final), 그만의 방식으로 블루스를 풀어낸 '마이 블루스'(My Blues),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애프터 워'(After War) 등 10곡이 담겼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작업했다는 7번 트랙 '패닉 디스오더'(Panic Disorder)는 '공황장애'라는 곡명처럼 평범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빨라져 소용돌이치는 템포가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그저 곡의 긴장감을 위해 이렇게 연주했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주변 지인들을 보고 이같이 '숨 막히는' 느낌을 더욱 세밀하게 표현해냈다고 했다. 제목도 뒤늦게 붙였다.
특히 이 곡은 그룹 뉴이스트 출신 김종현이 피처링으로 참여해 가사도 있다. 김종현은 이번 제작사 에버모어 소속이라는 인연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이근형은 "이 곡에는 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젊은 뮤지션과는 교류가 없어서 고민했다"며 "이 노래가 약간 무거운 음악인데도 김종현은 표현을 잘 해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기타리스트로서 외길을 걸어온 지난 약 40년의 세월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음악인들이 설 곳이 사라지면서 여러 후배가 생계를 걱정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컴퓨터 가상 악기 기술도 발달해 세션 수요가 예전 같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체하지 못하는 연주의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근형은 "가상 악기는 특정 음만 '딱딱' 치기에 실제 사람이 하는 연주와는 전달력이 다르다"며 "생각보다 소리가 얇게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음반을 프로듀싱할 때 특히 베이스는 꼭 사람이 연주해야 한다고 종용한다"며 "연주 결과의 묵직함이 다르다. 또 그래야 음악하는 친구들이나 (레코딩 스튜디오의) 실장들도 살 것이 아니냐"고 말하며 웃었다.
이제 기타를 막 잡은 '새내기' 기타리스트를 위한 조언을 구하니 그는 망설임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흔히들 남들이 잘한다고 해야 인정받는다고 느끼지만, 내가 좋아야 오래 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다.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젊은 친구들의 최대 문제는 색깔이 비슷하다는 점이에요. 나만의 색깔이 강해야 대체가 불가능하거든요. 기타 치는 '행위'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음악적 자존심'을 키우면 좋겠어요."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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