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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연금 개혁에 정치생명 건 마크롱…우리에게도 그런 결기가 있나

송고시간2023-03-2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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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국민들이 싫어할 게 뻔한 연금 개혁의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골자는 연금 수급을 시작하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노동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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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의 연금 개혁 반대 시위대 둘러싼 경찰
프랑스 정부의 연금 개혁 반대 시위대 둘러싼 경찰

(파리 AP=연합뉴스) 프랑스 경찰이 19일(현지시간) 수도 파리에서 정부의 연금 개혁 반대 시위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 연장 등을 골자로 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하원 표결을 건너뛰겠다고 밝힌 가운데 파리와 그 외 주요 도시에는 쓰레기 수거자 파업으로 쓰레기가 길거리에 쌓여 악취를 풍기고 있다. 2023.03.20 ddy04002@yna.co.kr

(서울=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특이한 점은 위기를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싫어할 게 뻔한 연금 개혁의 칼을 빼 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골자는 연금 수급을 시작하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노동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받는 연금액은 같은 데 일은 더 하라는 것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집회와 시위가 벌어졌고 교통, 에너지, 환경 미화 등 많은 노동조합이 대규모 파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시위에는 정부 추산 128만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난해 5월 41%였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28%로 곤두박질쳤다. 2018년 12월 노란 조끼 시위 때의 23%보다는 낫지만,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당시에는 도화선이 된 유류세 인상을 유보하는 탈출구가 있었지만 지금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는 지난 11일 상원을 통과한 개혁안이 하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보이자 긴급사태 시 정부가 의회를 건너뛰고 입법할 수 있는 헌법 49조 3항을 활용해 하원 표결을 '패싱'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처럼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감행하는 것은 프랑스의 연금 구조가 현 상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유럽 주요국 가운데 연금 수령 연령이 가장 낮고 소득대체율은 75%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 수준이다. 그는 1차 임기 때도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가 대대적인 파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논의를 일단 중단했으나 재선 과정에서 다시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야당이 총리 불신임을 추진하고 시위 현장에서 '대통령 하야' 구호까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끝까지 소신을 관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3분의 2가 연금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연금 개혁의 성공이 이를 실행한 정치인의 성공으로 이어진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그의 도전에 주목하는 이유는 정부와 의회, 그리고 정치 지도자가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국이 연금 개혁이라는 정책 이슈로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사이 우리 정치는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여당의 대통령 친정 체제 구축, 친일·반일 논쟁 등 정쟁 이슈 일색이다. 그만큼 다른 국가 중대사에 대한 준비가 잘 돼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실상은 정반대다. 연금 개혁만 하더라도 그 시급성이 프랑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월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적자 시점은 2042년에서 2041년으로 1년, 고갈 시점은 2057년에서 2055년으로 2년 또 앞당겨졌다. 더욱 심각한 점은 저출산·고령화가 숨 막힐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적립금이 바닥나더라도 일부 선진국처럼 그해에 걷은 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소위 '부과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지금 같은 출산율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이처럼 위태로운 돛단배가 절벽을 향해 가는데도 정부, 국회 어디 하나 총대를 메고 나서는 곳이 없다. 연금을 교육, 노동과 함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내걸었던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 설치 공약을 사실상 철회했고, 공을 넘겨받는 국회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 그 자체다. 국회 연금특위는 다음 달 말까지 가동되고 이를 토대로 정부가 10월 말까지 국민연금 운영계획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하는데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이 거의 생략된 상태에서 힘 있는 개혁, 국민이 공감하는 개혁이 이뤄질 리 없다. 내년 총선을 거쳐 대통령 임기가 중반을 넘기면 개혁 동력이 사라질 공산이 크다. 당장 나서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되고 아예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주판알만 튕기며 머뭇거리다가 미래 세대의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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