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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은 한 대법관이 독립운동하듯 내렸다?

송고시간2023-03-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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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한국 정부가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내놓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일 간 최대 정치·외교 현안으로 부각시킨 과거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쏠린다.

"어느 대법관 한 명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도 않고 또 외교부나 국제법학회 등에 의견조회도 하지 않은 채 얼치기 독립운동(?) 하듯 내린 판결 하나로 야기된 소모적 논란과 국가적 손실이 너무나 컸다"며 대법원의 과거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비판했다.

전범 기업인 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확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앞서 일본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했던 2012년 대법원 판결을 지칭한 것으로, 외교관계나 국제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법리보다 민족의식에 경도된 판결이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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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현 평통 사무처장 "강제징용 배상, 대법관 한 명이 얼치기 독립운동하듯 판결"

대법원, 2012년 판결서 "'강제징용=합법'이란 일본 법원 판단은 우리 헌법과 정면충돌"

당시 대법관 4명 참여한 소부서 만장일치…전원합의체 꼭 회부해야 하는 상황 아냐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한국 정부가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내놓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일 간 최대 정치·외교 현안으로 부각시킨 과거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쏠린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석동현 사무처장은 외교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다음 날인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새로운 한일관계와 세계를 주름잡을 대한민국 미래 세대를 위한 길"이라며 외교부의 해법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어느 대법관 한 명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도 않고 또 외교부나 국제법학회 등에 의견조회도 하지 않은 채 얼치기 독립운동(?) 하듯 내린 판결 하나로 야기된 소모적 논란과 국가적 손실이 너무나 컸다"며 대법원의 과거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비판했다.

이는 전범 기업인 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확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앞서 일본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했던 2012년 대법원 판결을 지칭한 것으로, 외교관계나 국제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법리보다 민족의식에 경도된 판결이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과연 객관적인 평가일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선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취지와 재판 절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한 근로정신대 소녀들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한 근로정신대 소녀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제공>>

일제 강점기 징용제도는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연이어 일으킨 일본 정부가 군수물자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고자 1939년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한 '국민징용령'에 따라 실시한 인력동원 제도다. 2020년 논문 '강제징용 쟁점과 한일관계의 구조적 변용'(양기호)에선 강제징용 피해 인정자는 21만8천명이고 1천명 이상이 소송을 진행 중인데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일본제철 징용 피해자에 지급하게 된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기준으로 전체 피해자에게 배상할 경우 약 22조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강제징용 소송은 1990년대 시작됐지만 풀리지 않는 배상 문제의 근본 원인은, 한일 양국이 1965년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맺은 한일협정(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 4개 부속 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협정의 부속 협정인 '한일 청구권협정'(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는 일본이 한국에 5억달러(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양국 간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법적 성격과 강제동원 책임 문제에 대해선 합의하지 않아 두고두고 분쟁의 불씨가 됐다.

한국 정부는 징용 피해자들에게 1974년 사망자 보상금(1인당 30만원)과 2008년 위로금(사망자 2천만원·부상자 300만∼2천만원)을 지급했으나 그 뒤로도 피해자들의 사과와 배상 요구가 이어졌다.

[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현황

(단위: 명)

유형 구분 동원자수 소계
군인 동원 한반도 내 51,948 209,279
한반도 외 157,331
군무원 동원 한반도 내 12,468 60,668
한반도 외 48,200


노무자 동원
한반도 내 도내 동원 5,782,581
6,488,467
관 알선 402,062
국민징용 303,824
한반도 외 국민징용 222,217
1,045,962
할당 모집,
관 알선
823,745
7,804,376

[※자료=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홈페이지]

한국인 피해자들이 1995년 미쓰비시중공업과 1997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강제징용은 사법적 문제로 비화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징용 당시 한반도가 '일본 영토'였고 원고들이 '일본 국민'으로 국민징용령 적용 대상이었다는 전제 하에 일본법에 따라 강제징용의 불법성과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고, 이 같은 판결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다. 또한 일본 법원은 피해자들의 모든 배상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과 일본의 재산권조치법에 의해 소멸됐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고수해온 입장이다.

일본 판결문에는 "일본은 1910년 8월 22일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조선반도를 일본의 영토로 해 그 통치하에 두었다"며 "당시 법제하에서 국민징용령에 기초한 원고 등의 징용은 그 자체로는 불법행위라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일본 법원에서 패소한 피해자들은 뒤이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1, 2심에선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판단이 나왔다.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217조는 외국 법원의 확정판결이 우리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으면 승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일본 판결이 이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 "강제징용 피해자에 일본 기업이 1억씩 배상"
대법 "강제징용 피해자에 일본 기업이 1억씩 배상"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18.10.30
yatoya@yna.co.kr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12년 5월 이인복(재판장)·김능환(주심)·안대희·박병대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 1부는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사건 상고심에서 일본 판결을 승인한 원심 판단은 위법하고 일본 기업들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판결문을 분석해 보면 대법원 판결의 핵심 근거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을 '불법'으로 보는 규범적 관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있는데 이에 비춰보면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와 반인도적 강제동원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일본 판결의 이유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우리나라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 배상청구권이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점에서 일본 법원과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 협상에서 일본 정부가 끝까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 책임을 부인해 일제의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청구권협정에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협상 과정에서 가해자(일본)가 불법행위와 배상 책임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는 마당에 피해자(한국) 스스로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된 내용의 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대법원 판단은 과거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견지한 태도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국 정부가 2005년 처음 공개한 한일회담 문서에는 청구권협정 체결 직전인 1965년 5월 회담에서 일본 측 니시야마 아키타 수석대표가 "우리 측의 제공(5억달러)은 어디까지나 배상과 같이 의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고 밝힌 기록이 있다.

대법원은 또한 우리나라 국내법에 근거해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의 적법성을 검토한 뒤, 일본법을 근거로 현재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과 과거의 미쓰비시, 일본제철이 동일한 기업이 아니라고 판단하거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가 지나 소멸했다고 본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결국, 2012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천명하고 전범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은 우리 헌법상 용인될 수 없다는 한국 사법부의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일제에 강제징용되는 조선인들
일제에 강제징용되는 조선인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대법원은 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고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판결했다.

법원조직법(7조)에는 소부를 구성한 대법관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명령·규칙의 헌법이나 법률 위반, 기존 판례의 변경, 소부에서의 재판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도록 돼 있다. 또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심리절차에 관한 내규(2조)는 '(소)부에서의 재판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의 세부 요건으로 '국민적 관심도가 매우 높은 사건' 등을 규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 내규는 2018년 제정돼 그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2년 상고심 재판이 소부에서 이뤄진 건, 우선 소부를 구성한 대법관 4명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관행상 대법관들이 협의해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 회부되진 않았다. 대법원에 문의한 결과 대법관들의 당시 심리 내용은 비공개여서 구체적인 이유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소부 재판이 절차나 법규에 어긋났다고 볼 수는 없다.

2012년 일본제철 상고심 사건 판결은 파기환송심에서 유지된 뒤 2018년 재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를 거쳐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전원합의체 심리에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김소영(주심)·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김재형·조재연·박정화·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 등 13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반대의견을 낸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의 대법관이 2012년 소부 판결에 동의했다.

대법 '강제징용 피해자에 일본 기업이 1억씩 배상'
대법 '강제징용 피해자에 일본 기업이 1억씩 배상'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2018.10.30
yatoya@yna.co.kr

2012년 상고심 판결 전 대법원이 외교부 등 외부 기관의 의견조회를 거쳤는지도 대법원에 문의했으나 확인하기 어려웠다. 심리 과정에서 판결이 외교관계나 국익에 미칠 영향도 고려될 수 있지만 적법한 재판 절차에 따라야 한다.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일본 전범기업 간의 민사재판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제3자인 정부가 개입할 수 없고, 함부로 개입하면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게 된다.

과거 보도에 따르면 2016년 11월 외교부는 강제징용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와 기업 입장에 동조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는데,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공개변론 절차 없이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게 소송규칙을 고치고 정부의 의견서 제출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뒤집기를 원했던 박근혜 정부에 협조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이른바 '사법 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2018년 재상고심 판결 전에 외교적 파장을 우려하는 외교부의 의견서가 대법원에 제출돼 검토됐음에도 2012년 소부 판결 취지가 그대로 인정돼 확정된 것으로 보면, 이런 정부의 우려가 대법관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리해 보면 일제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을 합법적 행위로 보는 일본 사법부의 판결을 배척한 2012년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석동현 처장의 언급처럼 외교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독립운동하듯 내린 판결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원합의체 심리나 외교부 의견조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 역시 타당하다고 하기엔 무리로 보인다.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하기 힘들고, 6년 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외교부 의견서까지 검토한 뒤에도 동일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법관 한 명이 내린 판결이란 대목은 사실에도 어긋난다.

법원 판결도 얼마든지 평가할 수 있고 대법원 판결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역할이 개별 사건의 시비를 가리는 것을 넘어 법령의 최종 해석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규범적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 신중을 기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광복 70여년의 한
광복 70여년의 한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광복 70주년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광주시청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광주지역 역사기록물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근로정신대 양금덕(86) 할머니가 광복 1년여 전인 지난 1944년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동원돼 일본에 도착하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사진 속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자신을 모습 앞에서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사진 속 여성 중 오른쪽 첫 번째가 양 할머니의 초등생 6학년 시절의 모습. 2015.8.13
pch80@yna.co.kr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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