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미술 컬렉터 울리 지그 "이젠 내 취향대로 수집하죠"
송고시간2023-03-10 08:43
지그 컬렉션 첫 한국 전시…2012년 홍콩에 수집품 1천500여점 기증
"기증 후에도 수집 계속…북한 미술품 컬렉션도 구축 중"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중국 미술품 컬렉션으로 유명한 스위스 출신의 컬렉터(수집가) 울리 지그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10일부터 송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송은에서 열린다.
그는 회사 재직 중 중국에 파견된 1970년대 후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중국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겠다는 목표 아래 체계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한 결과 '지그 컬렉션'은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에서 최고로 꼽힌다.
평소 중국에 자신의 수집품을 반환하겠다고 밝혀왔던 지그는 실제 2012년 홍콩의 M+(엠플러스) 뮤지엄에 소장품 중 3분의 2 규모인 1천463점을 기증했다. 이는 개인의 미술품 기증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2011년 11월 개관한 M+뮤지엄은 지그 갤러리를 마련해 지그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지그 컬렉션만을 한국에 소개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품 기증 이후 남은 소장품과 이후 추가로 구입한 작품 등 600여점의 소장품 가운데 스위스 큐레이터 베르나드 피비셔가 선별한 47점을 선보인다. 아이웨이웨이(艾未未)를 비롯해 35명 중국 작가의 설치와 영상, 조각, 회화 등을 소개한다. 쩡판즈(曾梵志) 등이 지그를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도 포함됐다.
지그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미술품 기증 이후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미술품을 구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집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항상 초점이 중국 미술이었고 예술을 통해 중국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대규모는 아니지만 중국 현대 미술 작품을 계속 수집할 생각입니다. 다만 홍콩 기증 이전에는 중국의 현대 미술사를 보여줄 수 있는 백과사전식 컬렉션 구축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에도 많은 (미술품 수집) 기관들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수집가도 많죠. 모든 시기를 아우를 수 있는 컬렉션을 만들겠다는 초창기 제 목표를 이제는 그런 분들이 할 수 있게 된 만큼 더 이상 그런 수집 철학을 고집하지는 않고 제 관심사와 취향을 반영해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2년 홍콩에 미술품을 기증할 당시 '사고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후 홍콩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중국 정부가 이에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당시 약속이 지켜질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M+ 뮤지엄 개관 당시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톈안먼(天安門)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이 포함된 '원근법 연구'는 전시작에서 빠지기도 했다.
지그는 "기증할 당시인 2012년에는 홍콩에서 미래에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뀐 것 같다"면서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중국) 본토에 대한 증오범죄도 증가하고 그런 감정들을 다루는 예술작품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것은 아닌지 그런 논쟁이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에둘러 우려를 표현했다.
그는 향후에도 중국 미술품을 중국에 기증할 것인지를 묻자 "아직 결정한 것은 없고 생각 중"이라면서 "한쪽에서 통합 관리하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지만 홍콩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그는 현재 중국 미술 상황에 대해서는 "점점 통제와 억압이 심해지고 있어 중국 예술가들은 음지에서 창작하는 전략을 택하거나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추상 쪽으로 나아가는 모습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북한 주재 스위스대사를 지낸 인연으로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한 지그는 북한 미술품 컬렉션도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작품으로는 함경아와 정연두, 이세현 등의 작품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대사로 있을 때 북한에 많이 갔고 2000년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북한 미술에 많은 관심이 있고 북한 미술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국 작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지만 컬렉션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항상 분단 상황에 관심이 있고 이 주제와 관련해 남북한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시는 5월20일까지. 월∼토요일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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