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겨 죽이고, 방치하고…잇따르는 반려동물 학대 사건
송고시간2023-03-07 16:30
양평서 개 1천여마리 사체 발견도…공급 과잉이 주요 원인
"'강아지 공장'서 물건 찍어내듯 반려견 생산…제도 보완해야"
전국 등록 동물생산업장 2천곳…"불법 업장 포함하면 5천여곳 추정"
(양평·경기광주=연합뉴스) 강영훈 권준우 기자 = 경기 양평의 한 주택에서 개 수백 마리가 사체로 발견돼 충격을 준 가운데 반려견 공급 과잉 문제가 이같은 사건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이른바 '강아지 공장'이라고 불리는 번식장에서 한 해 수만~수십만 마리의 개가 쏟아져 나오다 보니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반려동물이 상당수이고, 그 중의 다수가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 굶겨 죽이고 방치하고…반려동물 사건 잇따라
지난 4일 양평군 소재 60대 A씨의 자택에서 수백 마리의 개 사체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A씨는 2~3년 전부터 유기견 등을 집으로 데려온 뒤 밥을 주지 않아 굶겨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의 집에서 발견된 개 사체는 당초 300∼400구로 알려졌으나, 추가 확인 결과 사체는 최대 1천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A씨는 "고물을 수집하기 위해 곳곳을 다니던 중 몇몇으로부터 '키우던 개를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이들로부터 한 마리에 1만원씩 받고 개들을 데려왔다"고 진술했다.
반면, 동물보호단체 케어 관계자는 "마을 주민 진술에 따르면 A씨는 일주일에 네 번 정도 한 차례에 2~3마리, 혹은 6~7마리를 데려왔다고 한다"며 "제보를 받아 A씨를 만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보니 번식장 연락처가 있었고, A씨로부터 '번식장에서 개를 넘겨받았다'는 실토를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A씨의 집에서 발견된 사체의 수 등을 볼 때 A씨 주장에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개를 데려온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일 경기 광주시의 펫숍에서는 개와 고양이 40~50마리가 최소 수일간 방치된 채 발견됐다.
펫숍 내부는 개와 고양이 배설물로 가득했고, 한쪽 편에서는 동사한 것으로 보이는 사체 4구가 나오기도 했다.
경찰은 펫숍 운영자 B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 공장서 공산품 찍어내듯…기형적인 반려견 생산 구조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른 사건의 원인으로 기형적인 반려견 생산 구조를 지목하고 있다.
반려동물 생산에 제한이 없다 보니 잉여 동물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잉여 동물 처리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에 대해 눈감아 왔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 동물생산업으로 등록된 합법 동물생산업장은 총 2천19곳이다. 동물생산량에는 상한선이 없다 보니 이들 업장에서 한 해 태어나는 반려동물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불법 번식장도 곳곳에 있다는 점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알려진 것보다 실제로는 더 많은 '강아지 공장'이 있다고 주장한다.
박소연 케어 활동가는 "불법 번식장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여서 정확한 파악은 어려우나, 전국에 최소 5천 곳의 번식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펫숍에서는 대부분 2~3개월령의 작은 개와 고양이를 판매한다"며 "이 중에는 사람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데, (개체 성장 후) 공산품이 아니다 보니 창고에 보관할 수도 없고, 결국 양평 사건과 같은 사례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 "동물생산업 관련 제도 보완해야"
농식품부는 무분별한 개 번식 및 판매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동물생산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불법 운영 적발 시 허가를 취소하는 등 관리 규정을 강화한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2017년 3월 공포, 이듬해 시행했다.
법안은 이후 개정을 거듭했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동물생산업 허가 과정은 일정 규모의 시설과 인력만 갖추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지자체 등에서는 생산업자가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상의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행정 처분을 할 수 있는데, 인력 문제로 인해 제보나 신고가 없으면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적발하더라도 단순 영업정지 처분만 내릴 수 있다 보니 2개월령 미만의 강아지 판매, 12개월령 미만 교배, 출산 10개월 내 재출산 등 금지 행위를 버젓이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무허가 업체는 완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무허가에 대해서는 벌금 500만원 부과가 전부이고, 영업장 폐쇄 등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번식장 사이에선 '무허가가 더 유리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신주운 활동가는 "펫숍 및 인터넷에서 동물 판매를 금지하고, 전문 브리더에 의해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사육 환경에서 임신·출산을 하도록 하는 등 동물생산업 전반을 손봐야 한다"며 "또 종모견 개별 등록 및 연간 판매 마릿수 제한 등을 통해 임신 후 곧바로 재임신이 이뤄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4월부터 강화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돼 무허가·무등록 업체에 대한 처벌이 징역 2년 또는 벌금 2천만원으로 강화된다"며 "등록 생산업자도 준수사항을 어길 경우 행위별로 벌금 조항이 신설됐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 내역 신고제나 모견 등록제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불법행위를 줄일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고심 중"이라며 "동물보호단체 등 현장 전문가와 동반 점검을 하는 등 단속 체계도 보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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