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대한제국의 '외교 무대' 꿈꿨던 돈덕전은 왜 사라졌을까
송고시간2023-02-19 09:00
당시 화려하고 세련된 건물로 주목…고종 즉위 40주년 행사 끝내 불발
일제강점기 역사 고스란히…"국운 걸린 외교 노력 묻어있는 공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6일 오후 찾은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 모습. 외관 공사가 끝난 건물 앞에 돈덕전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202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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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황금색 비단 커튼과 황금색 벽지, 이에 어울리는 가구와 예술품들, 이 모든 가구는 황제의 문장인 오얏꽃으로 장식되었다."
독일인 엠마 크뢰벨은 1905∼1906년 한국을 다녀간 뒤 남긴 회고록에서 덕수궁에 있던 한 건물에 대해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다"며 이렇게 회상했다.
외국인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 공간은 바로 덕수궁 내 서양식 2층 건물이었던 돈덕전(惇德殿)이다.
돈덕전은 덕수궁의 또 다른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石造殿) 뒤편에 있던 건물로, 1907년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된 뒤 순종이 황제로 즉위할 때 사용한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다.
1904년 덕수궁에서 발생한 대화재 당시 불타지 않고 남아있었다고 전한다.
문화재청이 2016년 펴낸 '덕수궁 돈덕전 복원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돈덕전은 길이가 127척(尺·길이의 단위로, 1척은 약 30.3cm), 폭 95척 정도였고 건평이 약 350평에 달하는 큰 건물이었다.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에 지어진 돈덕전은 '외교의 공간'으로 기능하고자 했다.
건물을 짓기 전인 1897년 고종은 500여 년간 이어온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가 됐음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근대국가로 나아가 자주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지였다.
그 일환으로 돈덕전에서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당시 고종은 일본,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등 주요 국가 특사가 참석할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하라고 명했으나, 전국적으로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이듬해인 1903년 4월로 행사를 미뤄야 했다.
하지만 아들인 영친왕(1897∼1970)이 천연두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일정이 또 연기됐고, 열강의 세력 다툼 속에 1904년 러일전쟁까지 벌어지면서 고종의 뜻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돈덕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덕수궁 화재 이후로 전한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905년 2월 고종은 돈덕전에서 황태자가 시좌(侍座·임금이 정전에 나갔을 때 세자가 옆에서 모시고 앉던 일)한 상태에서 청나라 공사를 접견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고종은 돈덕전을 외국인과 교류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국제 교류의 현장이라는 장소적 특성 때문에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돈덕전의 기능도 일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외국 사신을 위한 연회장이나 예식 공간으로 쓰려던 당초 의도와 달리 일본인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일본인이 주관하는 행사를 치르는 장소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1907년에는 순종의 즉위식이 거행됐지만, 고종이 참석하지 않은 '반쪽 행사'에 그쳤다.
고종과 대한제국의 '꿈'이 담겨있던 돈덕전은 1920년대 들어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건물이 됐다.
이후 덕수궁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돈덕전은 1930년대에 이미 헐린 것으로 전한다. 그 자리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 공간인 이른바 '아동 유원지'가 들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박상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학예연구사는 "돈덕전은 국운이 걸려있던 건물"이라며 "단순한 연회장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외교의 장(場)으로 가려던 노력이 묻어있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박 학예연구사는 돈덕전 재건과 관련, "옛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을 넘어 1900년대 열강의 틈에서 외세에 맞서고 자주독립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한 상황 등을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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