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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뭍이 그리운 흑산도

송고시간2023-03-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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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먼 길을 달려, 또 남서쪽으로 바닷길을 헤쳐 흑산도를 찾게 한 건 전광용의 단편소설 '흑산도'였다.

◇ 흑산공항, 큰애기의 뭍을 향한 그리움을 지울까?

흑산도(黑山島)는 목포에서 약 97㎞의 뱃길을 가야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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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깃대봉에서 바라본 흑산군도 [사진/진성철 기자]

홍도 깃대봉에서 바라본 흑산군도 [사진/진성철 기자]

(신안=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배는 물때를 따라 떠나야 했다." (중략….) "떠나는 뱃길이 썰물이라면 돌아오는 뱃길은 밀물이었다."

남쪽으로 먼 길을 달려, 또 남서쪽으로 바닷길을 헤쳐 흑산도를 찾게 한 건 전광용의 단편소설 '흑산도'였다. 그리고 2026년이면 흑산도에도 하늘길이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 흑산공항, 큰애기의 뭍을 향한 그리움을 지울까?

흑산도 사리마을 포구와 칠형제 바위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 사리마을 포구와 칠형제 바위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黑山島)는 목포에서 약 97㎞의 뱃길을 가야 닿을 수 있다. 쾌속선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연중 100일가량은 기상 여건 등으로 왕래할 수 없는 섬이 된다. 유배당한 정약전은 '흑산'이란 이름이 무섭다고 했다.

흑산도 예리항으로 들어오는 쾌속선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 예리항으로 들어오는 쾌속선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공항 예정 부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하는 안이 지난 1월 말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통과됐다. 공항이 건설되면 서울에서 흑산도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흑산도는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는 섬이다. 홍도, 장도, 대둔도, 영산도 등 유인도와 무인도인 작은 섬 100여 개와 함께 흑산군도를 이룬다.

전광용의 등단소설 '흑산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전광용의 등단소설 '흑산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섬 여행지를 물색하다 '꺼삐딴 리'를 쓴 전광용의 1955년 등단소설 '흑산도'가 눈에 띄었다.

이 소설은 흑산도 큰애기(처녀를 일컫는 사투리) 북술이를 통해 섬살이를 전해준다. 폭풍우에 사라져간 흑산도 총각 용바우와 육지에서 같이 살자고 조르는 곱슬머리 청년 사이에서 갈등하는 북술이를 통해 흑산도 아낙들의 숙명을 들려준다.

흑산도항방파제등대길 앞에 있는 흑산도아가씨 동상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항방파제등대길 앞에 있는 흑산도아가씨 동상 [사진/진성철 기자]

소설의 이야기보다는 "까막개 큰 애기들에게는 뭍이 향수처럼 그리웠다" 같은 문장이 흑산도로 향하게 했다. 자연의 때에 맞춰야만 오갈 수 있던 옛 시절 섬에 대한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다.

해 질 무렵 상라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예리항과 열두 굽잇길 [사진/진성철 기자]

해 질 무렵 상라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예리항과 열두 굽잇길 [사진/진성철 기자]

막상 흑산도에 도착하니 쾌속선과 항만이 발달한 지금에도 섬에서 못 나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래도 예리항에 걸린 '흑산공항 건설 축하' 현수막은 바다에 갇혀 버린 듯한 고립감을 덜어 주었다.

◇ 관광택시 타고 흑산도 구경

진리마을 앞 팽나무 두 그루 [사진/진성철 기자]

진리마을 앞 팽나무 두 그루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 여행은 대개 관광택시를 이용한다. 2시간가량 섬을 돌며 12개의 마을을 구경한다. 팬데믹 이전에는 관광버스도 많았지만 모두 사라졌다. 길은 문암산(405m), 상라산(230m) 등이 가파르게 솟아 있어 굽이지고 험하다.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예리항에서 관광택시를 탔다.

첫 번째 마을은 면 소재지인 진리다. 조선 숙종 때 수군의 흑산진이 있던 곳이다. 진리 바닷가에는 큰 팽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이은 채 자라고 있다. 연리지를 이룬 팽나무 사이는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아 보였다.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택시 기사 이상순 씨는 "옛날 어른들은 팽나무에 열매가 열려야지 갯밭에서 고기가 잘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진리성황당의 상당 [사진/진성철 기자]

진리성황당의 상당 [사진/진성철 기자]

진리를 지나 배낭기미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에 진리성황당이 있다. 성황당의 상당은 두 겹의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돌담 옆으로 난 숲길을 5분여 걸었더니 당산 끝에 바다가 보였고 낡은 용신당이 나타났다. 당산 숲길을 걷는 동안 "여기에서 '전설의 고향'을 촬영했다"는 이 씨의 말에 기분이 살짝 으스스했다.

당산 숲길

당산 숲길

이곳에는 풀피리 총각 전설이 내려온다. 한 육지 총각이 옹기장이 배를 타고 흑산도에 왔다. 총각의 풀피리 소리에 반한 성황당의 처녀 귀신이 풍랑을 일으켜 배가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옹기장이는 총각이 다른 마을로 물을 길으러 간 사이에 급히 흑산도를 떠났다. 총각은 멀어져 가는 배를 보며 뭍을 그리워하다 죽었다는 이야기다.

읍동마을 앞 옥섬 [사진/진성철 기자]

읍동마을 앞 옥섬 [사진/진성철 기자]

고을 원님이 살았다는 의미로 고을기미라고 불린 읍동이 다음 마을이다. 읍동 앞바다에는 옛날에 죄인을 마을에서 격리해 가둔 자연 감옥인 옥섬이 있다.

아침에 상라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예리항과 열두 굽잇길 [사진/진성철 기자]

아침에 상라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예리항과 열두 굽잇길 [사진/진성철 기자]

상라산 봉수대는 택시에서 내려 꼭 올라가 봐야 하는 흑산도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이다. 읍동에서 상라봉으로 향하는 열두 굽잇길과 예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흑산도 북쪽의 공항 건설 부지도 보인다. 봉수대 전망대에 서면 아침에는 뭍으로 향하는 뱃길을 따라 예리항에 비치는 햇살을, 저녁에는 홍도, 장도 쪽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사진/진성철 기자]

상라산 고갯길 주차장에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와 핸드프린팅도 있다.

한다령 고갯길 [사진/진성철 기자]

한다령 고갯길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의 남서쪽 깊은 곳에 있어 지피미로 불리는 심리 마을을 지나면 한다령을 넘게 된다. 한다령은 문암산과 선유봉 사이 고개로 남동쪽 사리 마을로 이어지는 또 다른 굽이진 고갯길이다. 이곳에는 흑산도 일주도로 완공을 기념하는 천사 동상이 있다.

흑산도 일주도로 준공을 기념해 세운 천사 동상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 일주도로 준공을 기념해 세운 천사 동상 [사진/진성철 기자]

해를 손에 쥔 듯한 천사상을 해 질 무렵 촬영할 수 있다.

사리마을 유배공원. 돌담길을 따라 사촌서당(맨 위 초가집), 천주교 공소(파란 지붕), 기념비 등이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사리마을 유배공원. 돌담길을 따라 사촌서당(맨 위 초가집), 천주교 공소(파란 지붕), 기념비 등이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바닷가에 모래가 많아 모래미로 불린 사리 마을은 자산어보를 쓴 손암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한 동네다. 돌담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정약전이 아이들을 가르친 사촌서당, 정약전을 기려 지은 천주교 공소가 있다. 뭍에서 흑산도로 유배당한 이들을 기리는 유배공원도 조성돼 있다.

면암 최익현이 손수 그을 새긴 지장암(오른쪽)과 최익현을 기리는 유허비 [사진/진성철 기자]

면암 최익현이 손수 그을 새긴 지장암(오른쪽)과 최익현을 기리는 유허비 [사진/진성철 기자]

면암 최익현이 손수 '기봉강산 홍무일월'(基封江山 洪武日月)'을 새기고 '지장'(指掌)이란 이름을 붙인 바위는 천촌 마을 어귀에 있다.

◇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운 홍어회

예리항 부둣가에서 말라가는 홍어 [사진/진성철 기자]

예리항 부둣가에서 말라가는 홍어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에 도착하면 들려오는 건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요, 보이는 건 '홍어' 간판이다.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삭히지 않고 주로 회로 먹는다.

홍어회 [사진/진성철 기자]

홍어회 [사진/진성철 기자]

한 식당에서 홍어회를 주문했다. 주인은 길게 토막 내고 껍질을 벗겨 둔 홍어를 냉장고에서 꺼내 홍어회를 썰어 냈다. 선홍빛의 홍어회는 고춧가루와 소금이 섞인 기름장, 초고추장과 함께 나왔다. 한두 점에서는 구린 암모니아 냄새가 풍겼지만 대부분 달짝지근하고 부드러웠다. 홍어 살이 입 안에서 녹았다. 꽃게를 먹은 홍어가 가장 맛있다고 흑산도 사람들이 귀띔했다. 백반에 찬으로 볶아 나온 홍어포는 삭힌 홍어처럼 구린내가 났다.

흑산수협 위판장에서 열린 홍어 경매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수협 위판장에서 열린 홍어 경매 [사진/진성철 기자]

홍어 경매가 아침에 흑산수협 위판장에서 열려 구경하러 갔다. 마름모꼴의 홍어들이 노란색 네모 바구니에 담긴 채 널려 있었다. 홍어가 분비하는 '곱'이 불빛에 반짝였다. 머리 부분인 물코에는 흑산도 홍어 이력번호가 기록된 QR코드가 달려 있었다. 홍어는 대부분 흰색 배가 보이게 진열돼 있었고, 드문드문 날개가 찢어지거나 변색한 녀석들은 등이 드러나게 놓여 있었다.

경매에 나온 흑산도 홍어 [사진/진성철 기자]

경매에 나온 흑산도 홍어 [사진/진성철 기자]

경매사가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1번치 5마리, 11만원 11만원" 외치자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쓴 중매인들이 손가락으로 가격을 표시하며 입찰에 응했다. 근래에는 흑산도에서 제법 홍어가 잡혀 비싼 녀석이 10만원대 초반이라고 했다. 암치로 부르는 암컷 홍어는 8㎏ 이상 나가면 1번치, 7㎏ 이상이면 2번치 순으로 분류한다. 숫치는 1번치가 5㎏ 이상이다. 위판장에서 홍어를 산 중매인은 홍어를 한 마리씩 비닐봉지에 담아 옮겼다.

한 주민이 홍어를 말리기 위해 손질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한 주민이 홍어를 말리기 위해 손질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도 홍어잡이는 국가 중요어업 유산으로 지정된 전통 방식이다. 홍어의 이동 경로에 주낙을 미리 펼쳐놓고 잡는다. 낚시에 미끼는 달지 않는다. 잡아 올린 홍어는 배의 수족관이 아닌 얼음 냉장 시설에 바로 보관한다. 신선한 홍어회를 먹겠다며 흑산도 횟집 수족관을 기웃거리면 웃음거리가 되는 셈이다.

흑산시장 먹거리촌 [사진/진성철 기자]

흑산시장 먹거리촌 [사진/진성철 기자]

◇ 흑산도와 단짝인 홍도

깃대봉 가는 길에 바라본 홍도 [사진/진성철 기자]

깃대봉 가는 길에 바라본 홍도 [사진/진성철 기자]

목포에서 출발한 쾌속선은 흑산도를 거쳐 홍도에 도착한다. 흑산도에서 홍도는 30여 분 걸린다. 그래서 홍도는 보통 흑산도와 함께 다녀온다. 홍도 여행은 1구 마을에서 깃대봉(364m)까지 등산과 관광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관광이다.

홍도 1경으로 꼽히는 남문바위

홍도 1경으로 꼽히는 남문바위

홍도는 섬 전체가 1965년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됐다. 노을이 비치면 섬이 붉은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해 홍의도라고 예전엔 불렀다. 흐린 날에 도착한 탓에 붉은 홍도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청어 미륵 [사진/진성철 기자]

청어 미륵 [사진/진성철 기자]

홍도 분교 뒤로 난 가파른 나무 데크 계단을 올라 깃대봉으로 향했다. 등산로 중간에 마주한 홍도의 청어미륵은 특이했다. 청어가 많이 잡히던 홍도의 어민 설화와 관련된 미륵불이다. 불상 형태가 아닌 홍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 2기를 모셔다 놓았다.

홍도에서 바라본 흑산군도 [사진/진성철 기자]

홍도에서 바라본 흑산군도 [사진/진성철 기자]

일몰 무렵 깃대봉에 섰을 때 흑산군도는 해무와 구름에 가려 흐릿했다. 하늘 전체가 구름에 덮여 있었지만 흑산도 바로 위 하늘은 밝았고, 엷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등산 도중 만난 한 여행자가 건넨 "구름에 싸인 흑산도가 아주 운치 있다"는 말 그대로였다.

홍도 관광유람선 [사진/진성철 기자]

홍도 관광유람선 [사진/진성철 기자]

다음 날 아침 홍도 관광유람선에 승선했다. 유람선은 홍도의 기암괴석과 해안동굴로 안내한다. 홍도 제1경으로 불리는 남문바위는 커다란 바위에 대문처럼 구멍이 뚫려 있어 소형 선박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주전자 바위 [사진/진성철 기자]

주전자 바위 [사진/진성철 기자]

굴속에서 가야금을 타면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실금리 굴, 홍도를 떠받치고 있다는 2개의 기둥이 서 있는 기둥바위, 주전자를 닮은 주전자 바위, 나무가 동굴 위에 매달려 거꾸로 자라는 동굴 등을 유람선의 아저씨가 소개했다. 이날은 거센 파도에 홍도 2구 마을까지만 보고 배를 돌려야 했다.

어부가 작은 고깃배를 타고 유람선 관광객들에게 회를 팔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어부가 작은 고깃배를 타고 유람선 관광객들에게 회를 팔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일곱 남매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 굳은 바위가 됐다는 슬픈여에서는 작은 고깃배를 탄 어부가 유람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가운데서 어부가 직접 떠 준 회를 맛보았다.

슬픈여 [사진/진성철 기자]

슬픈여 [사진/진성철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z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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