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100일] "그 골목 직접 와보니 눈물 쏟아져"
송고시간2023-02-03 11:01
해외와 지방서 추모 발길 이어져…참사 골목엔 '추모의 벽'
"이태원 방문자 10분의 1로"…이태원 상인들, 희망 위한 노력
(서울=연합뉴스) 송정은 기자 =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이태원 참사 100일을 사흘 앞둔 2일 오후 7시께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앞 시민분향소에는 가수 아이유의 '겨울잠'이 흘러나왔다.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 10여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주최한 '헌화의 날' 행사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주최 측이 현장에 준비해 놓은 꽃다발을 차례로 집어 든 뒤 영정 앞에 내려놓았다. 꽃다발에 달린 메모지에는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버팀목이 될게요', '깊은 위로와 사랑을 전합니다' 등의 글귀가 적혀있었다.
분향소를 지키던 유족들은 헌화하는 이들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굽히고 흐느꼈다.
최휘주(26)씨는 고(故) 이지한 씨와 같은 대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곧 새내기 대학생이 들어오는 3월이 되는데 여기 있는 친구 중 대학생도 있고 대학을 졸업해 직장에서 꿈을 펼칠 친구도 많았겠죠. 많은 이들과 같이 기억하고 싶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이날 꽃다발을 마련한 참여연대 활동가 문은옥(38)씨는 "아침 일찍 꽃시장에 다녀왔다"며 "(유가족이) 그간 하얀 (국화)꽃만 보셨을 것 같아서 생기있는 색깔의 꽃과 함께 그리운 마음을 담은 노란 국화를 준비했다"고 했다.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의 해밀톤호텔 가벽은 '추모의 벽'이 됐다.
이날도 희생자를 위해 추모 메시지를 남기거나 기도를 올리는 이의 발길이 이어졌다.
골목 어귀에는 추모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펜과 메모지, 그리고 접착용 테이프가 함께 놓여 있었다. 바람에 메모지가 날아가지 않도록 꼭 붙이기 위해서다.
이날 오후 골목을 찾은 시민 중에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이태원에 왔다는 사람이 많았다. 해외나 지방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 왔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한국에 이날 도착했다는 일본인 치하루(51)씨는 일본어로 '매우 슬프고 명복을 빈다'는 추모 메시지를 메모지에 적어 추모의 벽에 붙였다.
그는 "사고 당시 속보 뉴스를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10대인 딸이 직접 찾아오고 싶다고 해 오게 됐다"며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이곳부터 방문했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에서 온 장미경(49)씨는 "조카가 세월호 참사 때 고등학생이었고, 이태원 참사 당시엔 서울에 있어 걱정을 많이 했다"며 "(희생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조카가 있다 보니 아픔에 공감됐다"고 했다.
대전에서 온 윤정미(55)씨도 참사 뒤 처음 이태원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이 골목을 직접 눈으로 본 건 처음"이라며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윤씨는 메모지에 '하늘나라에 가서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한다'고 썼다.
광주에서 두 딸과 함께 온 박모(54)씨는 "아픔을 나누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박씨의 스무 살 딸 전모 씨는 벽면에 '다음 세상은 예쁜 세상에서 만나요'라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분향소에서 연신 울며 분향하던 윤모(70)씨는 "이태원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찾았는데 이렇게 눈물이 나오리라 상상하지 못했다"며 "꽃다운 나이에 간 아이들이 애틋하다. (분향소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눈물이 났다"고 울먹였다.
참사는 이태원 상인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태원 번화가 곳곳에서는 '임대' 공지문이 붙은 공실과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있는 한 식당 사장은 "마음이 아파서 도무지 얘기를 못 나누겠다. 참사 이후 직원이 너무 많이 그만뒀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경모(21)씨는 "코로나19로 상권이 붕괴했다가 지난해부터 회복세에 접어든 가운데 참사가 일어났다"며 "주말 하루 매출이 (참사 전에는) 1천만∼2천만원이었으나 최근엔 120만∼180만원 뿐"이라고 말했다.
이 편의점은 원래 24시간 영업을 했으나 최근에는 월·화·수요일에는 자정에 문을 닫는다.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김모(30)씨는 "거리에 있는 주점 중에 참사 이후 평일에는 문을 닫고 주말에만 여는 가게가 많다"며 "거리에 사람이 10분의 1로 줄었다. 오가는 사람도 주로 외국인이나 지역 주민"이라고 전했다.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있는 이태원관광특구 홍보관 3층 상담소에서는 전문 상담사가 상인들에게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조윤희(53) 용산구 보건소 건강관리과 정신건강팀장은 "상권이 붕괴해 생계가 어려워지다 보니 상인들에게는 2차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조금씩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움직임도 있다.
거리 곳곳에는 '이태원을 사랑합니다(I LOVE ITAEWON)'라는 문구와 함께 이달 말까지 주변 가게 방문 시 주류를 할인해준다는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이달 4∼5일에는 '이태원에 사랑이 자리잡기를!'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상권 부흥을 도모하는 민간 자선 콘서트가 이태원 일대 클럽에서 열린다.
sj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3/02/03 11: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