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국장' 영정 그린 정형모 화백 별세(종합)
송고시간2023-02-03 18:13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1979년 11월3일 오전 10시부터 중앙청(현재의 광화문 부근) 앞 광장에서 열린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의 국장(國葬) 영결식. 당시 영결식에 사용된 215×151㎝ 크기 영정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캔버스에 유채)이었다. 이 극사실 초상화를 그린 '인물화의 대가' 정형모(鄭炯謨) 화백이 3일 낮 12시10분께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7세.
오원철(1928∼2019) 전 대통령 제2경제수석이 상공부 차관보로 있을 때 눈에 띄어 1975년 8월 28일 청와대에 가서 박 대통령을 만났고, 그 전해 사별한 육영수(1925∼1974) 여사의 인물화를 의뢰받은 것을 시작으로 청와대와 인연을 맺었다.
대표작은 1979년 박 대통령의 국장 때 사용된 대형 영정이다.
박 대통령 시해 다음 날인 10월 27일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의뢰를 받고 1975년 8월 28일에 만났던 기억을 살려 영정을 그렸고, 국장 하루 전날(11월 2일) 완성했다. 이 영정은 운구 행렬이 중앙청 앞 광장을 떠나서 남대문 쪽으로 행진할 때 맨 앞을 장식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돼있다.
청와대 세종실에 걸려있다가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무회의장 앞으로 옮긴 역대 대통령 초상화 중 전두환,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의 초상화도 고인이 그렸다. 참고로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화는 김인승(1910∼2001) 전 이화여대 교수, 최규하 대통령은 박득순(1910∼1990) 화백, 노태우 대통령은 김형근 화백, 노무현 대통령은 이종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박근혜 대통령은 이원희 전 계명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김형주 화가가 각각 그렸다. 고인은 인터넷 매체 백세시대와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머리숱이 적어서…더 나았을 때를 생각하고 보기 좋게 그렸다"고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리기 전에 몇 차례 만났다. 신중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1983년에는 리비아 정부의 초청으로 리비아에 다녀와서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 국가원수의 일대기 그림을 그려서 보냈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전 교황, 조중훈·이병철 전 회장 등 기업인의 초상화도 제작했다.
경남 통영(한산도) 제승당 충무사에 봉안된 이순신 장군 초상화(1978년작)와 권율 장군 영정 등도 고인의 작품이다.
말년에도 서대문구 홍은동 '정형모 미술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그렸다. 2018년에는 뒤를 이어 인물화를 그리는 딸 정진미씨와 함께 부녀 초대전 '인물화의 계보를 잇다'를 열기도 했다.
유족은 2남3녀(정진원<튀르키예 에르지예스대 교수>·정진철<시인>·정진미<화가>·정진영<미래중심반포학원장>·정진석<카메라 감독>) 등이 있다. 빈소는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305호실, 발인 5일 오전 9시, 장지 수원 이목동 선영. ☎ 02-2262-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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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3/02/03 18:1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