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어제와 오늘] 증권시장 ①
송고시간2023-02-04 08:00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1956년 서울 명동에 대한증권거래소를 설립하고 12개 종목을 상장해 거래를 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이후 1979년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칠판을 대신한 전자식 시세 게시판이 등장했습니다. 1983년 시가총액방식의 종합주가지수(KOSPI) 제도가 도입돼 100포인트로 출발해 1989년 처음으로 1,000포인트를 돌파했고 2007년 2,000, 2021년 3,000포인트를 돌파했습니다. 한국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해 온 증권시장의 역사를 모아 봤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집단경쟁매매 방식인 '격탁매매' 모습. 벽돌 모양의 나무토막 '딱딱이'를 탁자에 내리쳐 가격을 알리는 방식이다. 당시 증권시장은 넓은 강당에 증권사 대리인이 모여 주문을 쏟아냈다. 고함을 치거나 두 손을 들어 호가를 표시하면 상황을 지켜보던 거래소 직원이 가격과 물량의 합치점을 찾아 딱딱이를 치면 집단매매가 이뤄졌다. 1956년 [한국거래소 제공]](http://img3.yna.co.kr/etc/inner/KR/2023/01/05/AKR20230105135300805_01_i_P4.jpg)
197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집단경쟁매매 방식인 '격탁매매' 모습. 벽돌 모양의 나무토막 '딱딱이'를 탁자에 내리쳐 가격을 알리는 방식이다. 당시 증권시장은 넓은 강당에 증권사 대리인이 모여 주문을 쏟아냈다. 고함을 치거나 두 손을 들어 호가를 표시하면 상황을 지켜보던 거래소 직원이 가격과 물량의 합치점을 찾아 딱딱이를 치면 집단매매가 이뤄졌다. 1956년 [한국거래소 제공]
![개별경쟁매매 방식인 포스트매매 모습. 컴퓨터가 없던 시기 입회장 곳곳에 있는 포스트(단상)에 주문표를 써내면 거래소 직원이 일치하는 주문을 찾아 맺어줬다. 다양한 종류의 주문을 시시각각 소화할 수 있어 1975년부터 격탁매매를 완전히 대체했다. 1971년 [한국거래소 제공]](http://img2.yna.co.kr/etc/inner/KR/2023/01/05/AKR20230105135300805_02_i_P4.jpg)
개별경쟁매매 방식인 포스트매매 모습. 컴퓨터가 없던 시기 입회장 곳곳에 있는 포스트(단상)에 주문표를 써내면 거래소 직원이 일치하는 주문을 찾아 맺어줬다. 다양한 종류의 주문을 시시각각 소화할 수 있어 1975년부터 격탁매매를 완전히 대체했다. 1971년 [한국거래소 제공]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에서 '국내 1호' 주식시세 전광판의 운영중단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시세 전광판은 1979년 업계 최초로 설치한 것이다. 2016년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img3.yna.co.kr/etc/inner/KR/2023/01/05/AKR20230105135300805_10_i_P4.jpg)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에서 '국내 1호' 주식시세 전광판의 운영중단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시세 전광판은 1979년 업계 최초로 설치한 것이다. 2016년 [연합뉴스 자료사진]
jo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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