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이 아닌 진짜 아픈 청춘…신간 '골골한 청년들'
송고시간2022-12-15 17:03
아픈 청춘들 보듬는 사회적 노력 촉구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스톤(가명) 씨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서른한 살 청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편의점, 사무보조 등 '저임금 노동'을 전전하다가 공공기관 뉴딜일자리에서 "처음으로 인간답게" 일하며 시민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차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최고 혈압이 250까지 치솟았고, 체온이 38~39도를 왔다 갔다 했다. 혈액검사 수치도 좋지 않았다. 여러 동네 병원에 다녔지만 확실한 진단명을 받지 못했다. 몸은 계속 안 좋아져 뉴딜일자리도 그만두었다. 아침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배고프면 밥 먹고, 다시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생활이 이어졌다.
여러 병원을 거치며 그는 뇌 MRI(자기공명영상장치)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정밀검사를 할 병원을 정하고, 의료진을 선정하고, 치료까지 받는데 거의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검사 비용뿐 아니라 이후 치료 효과까지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러 병원에 가도 정확한 진단명도 2년 동안 못 알아냈고, 차도도 없으니 충분히 도움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어느 병원에 갈지, 어떤 치료를 받을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주치의 제도처럼 충분히 상담받고 도와주는 의료 제도나 의료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를 수년간 괴롭혔던, 의료진도 제대로 몰랐던 병은 고혈압, 편도선염, 중추기원의 현기증, 소뇌염, 수면무호흡증이었다.
김미영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수석연구원과 김향수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이 쓰고, 사회건강연구소가 기획한 '골골한 청년들'(오월의봄)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은 20~30대의 젊지만 아픈 청년 7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저자들은 만성질환을 진단받았고,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게 체력적으로 어려워 일을 그만둔 적이 있는 청년들을 심층 취재했다. 그들은 취업준비생, 공기업 정규직, 프리랜서, 계약직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고, 비염, 허리디스크, 크론병, 망막 분리, 식도염, 소뇌염, 과민대장증후군 등 여러 만성질환을 겪었다.
이들 청년은 몸뿐 아니라 마음고생도 그간 심했다. 남들로부터 "하자 있는 사람", "젊은 데 그거 일했다고 아프냐"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까운 가족으로부터도 "차라리 같이 죽자", "나는 안 아픈데 너는 왜 그러니"라는 비수 서린 말을 듣기도 했다.
치료받기 어려운 경우도 허다했다. 인터뷰에서 상당수 청년은 집안 형편이나 소득수준, 보건의료 제도의 혜택,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치료 자체가 분투였다고 말한다. 비싼 검진 비용의 처리가 잘못되는 바람에 병원 서버실 직원과 싸워야 하거나, 산정 특례를 받지 못하면 원하는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방 소도시 거주자의 경우,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병원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면 건강 관리에도 더 유리할 것을 알지만, 취업이라는 전장에서 아픈 몸은 그들에게 가려야 할 약점이었다.
책은 '골골한 청년들'의 생애사를 기반으로 자아, 질병 서사, 돌봄, 사회적 관계, 노동, 생활시간, 사회정책 문제를 조명한다. 그러면서 '골골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상력을 우리에게 촉구한다. 또한 그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임을 환기한다.
"서사는 누군가가 살아가고 경험한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도구다. 아파야 보이는 것이 있고 아파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들의 질병 서사는 무엇이 문제인지 문제의 정의부터, 행위, 감정, 사건에 관한 개인적 해석을 드러낸다. 나아가 질병과 젠더가 권력을 분해하는 방식, 골골한 사람들의 삶을 가로막는 방식과 상처 입히는 방식을 드러낸다."
372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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