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유연했던 몽골 제국 '주치 울루스'…세계사를 뒤흔들다
송고시간2022-12-15 10:00
프랑스 역사학자가 쓴 '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출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3세기 몽골은 세계 최강을 자랑했다. 칭기즈칸과 그 자손의 영도 아래 몽골은 유라시아를 평정했다. 칭기즈칸의 장자 주치와 그의 아들 바투는 분봉 받은 영토를 토대로 또 다른 영토를 개척했다. 오늘날 '주치 울루스'(금장한국 또는 킵차크한국)라고 불리는 주치 가문의 영지는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타르스탄, 러시아지역까지를 아울렀다. 주치 가문은 이렇게 넓은 지역을 무려 300년 가까이 다스렸다. 다양한 종교와 인종이 뒤섞여있는 이곳을 그들은 어떻게 다스렸기에 이 같은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것일까.
프랑스 낭테르대에서 중세사를 가르치는 마리 파브르 교수가 쓴 '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까치)은 이 지역을 다스린 유목 정권 '호르드'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주치 가문이 세운 유목 정권을 '호르드'로, 제국 내 주치 후손들과 킵차크인·러시아인 등 모든 복속민들과 그들이 사는 지역은 울루스로 표현한다.
저자는 호르드가 발행한 주화, 칙령, 외교 서신 등과 더불어 다른 정주 세력들이 아랍어, 튀르크어, 러시아어, 라틴어로 남긴 사료를 검토해 그간, 중국 원나라나 홀레구 울루스(일한국)에 집중돼온 몽골 제국사의 논의를 확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호르드는 13~14세기 유라시아 상업의 중추이자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장악한, 무역의 달인들이었다. 이들은 발트해, 볼가강, 카스피해, 흑해의 순환로를 단일한 운영체제로 연결하는 망을 형성했고, 이는 다시 중앙아시아, 중국, 중동, 유럽까지 연결됐다.
이런 장거리 무역을 증진하고자 유목 지도자들은 군대의 전령체계(얌)를 활용해 상품을 보내거나 명령을 내리는 유연성을 보였다. 또한 목초지와 무역로, 시장에 대한 접근을 확고하게 통제했고, 외부인이 중심지 근처에서 무역하도록 유도했다. 정복한 사람들의 기술과 능력을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르드는 이런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호르드가 엄청난 부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호르드의 사회·정치·경제 체제는 연속과 변화의 산물이었다. 주치 가문 사람들은 통치자였지만, 도시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유목 생활을 계속했다. 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지만, 초원의 법과 정신만은 잊지 않았다.
물론 주씨 가문의 수장인 칸이 제국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호르드 정권은 집단지도체제로 바뀌었다. 칸은 키야트, 망기트, 시린, 킵차크 등 주요 민족의 지도자인 '벡'(beg)과 권력을 공유했다.
저자는 호르드의 독특한 정치체제, 즉 칸과 지배계층 사이의 복합적인 권력 공유 방식은 유동적, 조직적, 혁신적인 경제 질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호르드는 대내외적 환경과 필요에 따라서 자유롭게 변화하는 유연한 정권이었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호르드는 러시아의 통치 구조와 이슬람 문화의 사회적 관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종교적 관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세계에 전파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호르드는 뛰어난 적응성과 동화력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켰다"며 "유목민은 세계사를 움직였으며 그중에서도 호르드의 사람들이 가장 크게 세계사를 움직였다"고 말한다.
488쪽. 김석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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