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는 법…신간 '돌봄과 작업'
송고시간2022-12-07 10:56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 소설가 서유미 등이 전하는 돌봄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내게 아직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설마 그 아이를 내가 키우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키우게 되더라도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을 쓴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 얘기다. 그는 비교적 늦은 결혼 탓에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중에는 부모님이 키워줄 거"라는 남편의 그럴듯한 제안과 '아이는 낳는 게 반'이라는 자신의 오만이 결합하면서 덜컥 아이를 낳아버렸다.
그 후 삶은 덜컥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아이는 정말 끝없이 울었다. "고요와 평화가 균형 잡혔던" 일상은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이제 난 망했다. 짧게 잡아도 20년 정도는 망한 거야…아무도 울지 않는 조용한 집, 순철과 두 고양이. 다시는 그 삶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일상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또한 맹렬한 행복을 느꼈다고도 했다. 둘째를 가진 이유였다. 그는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나를 내주고 엄마라는 사람이 되었다"고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간혹 텅 빈 마음을 느꼈지만, 그 자리를 채운 건 역시 사랑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이를 키우며 그는 진짜 사랑을 느꼈고, 앞으로는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다고 결심했다. 정서경은 그 후 시나리오 인생에서 분기점이 된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 등 로맨스 걸작을 잇달아 써냈다.
최근 출간된 에세이 '돌봄과 작업'(돌고래)에 나오는 얘기다. 책에는 소설가 서유미, 아티스트 전유진, 번역가 홍한별, 입양지원 실천가 이설아,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과 장하원, 미술사 연구자 박재연, 편집자 김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이자 엄마라는 정체성을 또렷하게 의식하며 작업해온 이들이 쓴 글이 담겼다.
외동을 키우거나 아이 셋을 키우거나 직접 낳았거나 입양을 했거나, 아이 기질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협조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저자들이 처한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열 한 명의 필자는 이 다양한 변수를 통과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과정을 선보인다.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다 보면 어느덧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고, 그 시간은 자신의 내면을 한층 단단하게 해준다. 또한 그런 시간의 힘은 일에도 투영된다. 소설가 서유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열 살이 되었고, 나에게는 소설책 열 권과 에세이 한 권이 쌓였다. 그중 일곱 권은 아이의 임신과 출산 이후에 썼다…. (중략)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밤에 일어나 모유와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만들어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아이를 재우려고 유아차에 태운 채 동네를 돌아다니고, 기저귀를 갈고 어린이용 반찬을 만드는 중에도 쓰는 일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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