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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퍼진 척' 기지 발휘…러군에 저항한 헤르손 병원 의료진

송고시간2022-11-2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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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군에 점령됐다가 가장 늦게 수복된 헤르손의 한 병원 의료진이 병원을 지키기 위해 수개월 간 러시아군에 맞선 것으로 드러나 화제가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헤르손 점령 직후인 지난 3월 러시아군이 트로핀카 병원에 들이닥쳐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된 의료진의 저항을 조명했다.

의료진은 때로는 병원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것처럼 꾸미고 의료 장비를 숨기고, 때로는 우크라이나군에 정보를 제공하며 러시아군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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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트로핀카 병원 의료진, 생사 오가고 감옥 신세도…수복 후 '금의환향'"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군에 점령됐다가 가장 늦게 수복된 헤르손의 한 병원 의료진이 병원을 지키기 위해 수개월 간 러시아군에 맞선 것으로 드러나 화제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기 흔들며 기뻐하는 헤르손 주민들
우크라이나 국기 흔들며 기뻐하는 헤르손 주민들

(헤르손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헤르손 시내에서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국장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탈환을 축하하고 있다. 헤르손은 지난 9월 러시아가 주도한 주민투표로 러시아에 병합됐으나, 러시아군이 드니프로 강 동안으로 철수함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수복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안정화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전했다. 2022.11.13 alo95@yna.co.kr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헤르손 점령 직후인 지난 3월 러시아군이 트로핀카 병원에 들이닥쳐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된 의료진의 저항을 조명했다.

수석의사로 이 병원을 책임지고 있던 레오니드 레미가(68) 박사는 출입문 위에 걸린 국기를 내리라는 요구를 거부하면서 "당신들이 원하면 나를 쏠 수 있겠지만 국기는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러시아군은 레미가 박사의 저항에 그대로 돌아갔지만, 이 만남은 이달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까지 병원 통제권을 놓고 의료진이 벌일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후 러시아군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의사를 구금하고 모든 우크라이나 상징물 사용을 금지했으며 병원 책임자에도 자신들이 뽑은 사람을 앉혔다.

그러나 의료진은 때로는 병원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것처럼 꾸미고 의료 장비를 숨기고, 때로는 우크라이나군에 정보를 제공하며 러시아군에 맞섰다.

이들의 저항은 헤르손을 러시아의 손에 완전히 넘기지 않으려는 헤르손 시민들의 비무장 저항의 일부였다. 헤르손 시민들은 점령 초기 강제 진압과 체포, 고문의 위험을 무릅쓰고 때로는 수천 명이 광장에서 반러시아 시위를 벌였다.

1914년 설립된 트로핀카 병원은 5층짜리 본관과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다. 460여 명이 근무하는 병원이지만 1991년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시설과 장비는 낙후됐다.

시의원 출신으로 1995년부터 이 병원 수석의사로 일해온 레미가 박사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서방에 있다고 믿는다며 러시아 침공이 시작됐을 때부터 병원을 러시아에 넘겨주지 않을 방법을 강구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러시아군이 장갑차를 타고 들이닥쳐 이 병원을 군 병원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자 레미가 박사는 미리 코로나19 보호복을 입고 있다가 코로나19로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지난 4월에는 아내와 아들, 손자가 점령되지 않은 지역으로 떠났지만 그는 병원에 남았다. 그는 "우리 병원이 러시아 병원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모든 직원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러시아는 헤르손을 완전히 장악하고 병원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점령군이 임명한 헤르손주 보건장관은 6월 7일 레미가 박사를 소환해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대신 라리사 말레타 수간호사를 병원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날 레미가 박사는 항의하다 뇌졸중 증세로 쓰러졌다.

말레타 수간호사는 병원 책임자 자리를 거부하다가 뇌졸중에서 회복 중이던 레미가 박사가 자신이 돕겠다면서 병원을 남을 것을 부탁해 이를 수락했다.

말레타 수간호사는 그날 우크라이나 보안기관에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하고 자신이 러시아에 협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의료진은 이후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는 등 겉으로는 러시아 요구에 따르는 모습을 보였지만 러시아 정부와의 계약을 거부하는 등 저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말레타 수간호사는 러시아군의 압박이 강화되자 8월 1일 가족을 남겨둔 채 우크라이나군 장악 지역으로 탈출했고, 뇌졸중에서 회복한 레미가 박사도 다음 날 아침 병원을 빠져나왔다.

레미가 박사는 이후 친구와 친척 집에서 지내는 도피생활을 하며 때때로 병원 직원들을 만났으나 9월 20일 러시아군에 붙잡혀 감방에 갇혔다. 그는 병원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주일 후 석방됐다.

그는 4인용 감방에 8명이 갇혀 매일 아침 서로 어깨동무하고 "러시아에 영광을, 푸틴에게 영광을"이라고 외치고 러시아 국가를 불러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0월이 되자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10월 중순 러시아군이 임명한 관리들이 헤르손을 떠날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이달 들어서는 의료장비를 훔쳐 가려는 관리들이 병원으로 오기 시작했다.

병원 직원들은 컴퓨터를 집으로 가져가고 고가 의료장비는 일부 장치를 숨기거나 고장 난 것처럼 꾸미는 방법으로 지켜냈다.

이달 10일 러시아군은 점령 8개월여 만에 물러갔고 다음 날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에 도착했다.

레미가 박사가 돌아오고 병원에는 다시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렸다.

레미가 박사는 "460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70명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떠났던 많은 직원이 헤르손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scite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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