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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남편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송고시간2022-11-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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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제34회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응우옌티땀띵(45) 씨는 베트남 이름을 갖고 있지만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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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봉사상 대상 받은 귀화 한국인 응우옌티땀띵

베트남서 유학 왔다가 18년째 통역·한국어 교육 등 봉사

(서울=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지난 15일 제34회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응우옌티땀띵(45) 씨는 베트남 이름을 갖고 있지만 한국인이다.

인터뷰하는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 응우옌티땀띵 씨
인터뷰하는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 응우옌티땀띵 씨

(서울=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제34회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귀화한 베트남 출신의 응우옌티땀띵 씨가 20일 서울 장안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2.11.21 khc@yna.co.kr

하노이 출신인 땀띵 씨는 5년 전인 2017년 귀화했다.

특히 그는 1989년부터 시작한 서울시 봉사상 수상자 중 첫 귀화 외국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땀띵 씨는 2001년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 국립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한국이 베트남과 수교하고, 1997년 베트남에 처음으로 한국어학과가 생겼다. 영문과를 생각했던 그는 베트남에서는 생소한 언어인 한국어를 선택했다. 한국 드라마가 전파되면서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졌고, 많은 사람이 배우지 않는 언어라서 취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대학 졸업 다음 해인 2002년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에 입학해 4년 뒤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에 있는 한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이 업체에 18년째 근무하고 있다. 베트남은 물론 다른 해외 국가로도 자주 출장을 간다.

봉사활동은 대학원에 다닐 때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다. 경기도 광주에서 발생한 베트남인 관련 사건 조사를 위한 첫 통역이 계기가 돼 경찰의 각종 사건 조사 관련 통역을 많이 했다.

서울시 봉사상 대상 받은 응우옌티땀띵 씨
서울시 봉사상 대상 받은 응우옌티땀띵 씨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지난 15일 제34회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귀화한 응우옌티땀띵 씨가 다섯 살 된 딸 응우옌하아잉 양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2.11.21 jobo@yna.co.kr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단체 등에서 한국어 교육도 하고, 베트남의 심장병 어린이 초청 무료 수술 지원 사업에서도 통역 봉사 등을 해왔다. 20일 서울 장안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결혼 이민도 아니고 유학을 왔다가 귀화했는데.

▲ 저는 유학 비자로 왔다가 워킹 비자로 변경했고 13년 만에 일반귀화를 신청해서 됐다.일반귀화는 쉽지 않다. 당시 추천한 사람이 2명이 있어야 했고, 추천자의 자격 기준도 아주 높았다. 해외 출장을 많이 나가는데 그때마다 비자를 받아야 해서 불편했다. 계속 한국에 살려고 한다. 한국 국적을 가지면 연금이 있으니 적어도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 처음에는 통역할 때 사법 관련 단어들이 좀 어려웠다. 그러나 나중에는 감정적으로 좀 힘들 때가 많았다. 과거에는 베트남 여성이 결혼하고 와서 남편에게 맞고 그랬다. 그럴 때는 안쓰럽고 동정심도 생기고, 반대로 베트남 사람이 가해자면 나도 괜히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전달만 하는 역할이지만 안 좋은 사건은 빨리 잊고 싶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통역은.

▲ 한번은 한국 남편이랑 베트남 부인이 싸워 경찰서에 갔고, 통역하게 됐다. 그때 남편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아내에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해줬고, 또 그 아내에게도 아내로서의 입장이 양쪽 나라가 좀 다르다고 설명해주고 했더니 잘 화해하고 돌아갔다. 몇 년 뒤에 그 아내가 SNS로 연락이 와 그때 통역해준 덕분에 잘살고 있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때 가장 뿌듯했다.

-- 한국어 강의도 했다고 들었다.

▲ 2000년대 초에 왕십리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가 많았다. 당시 성동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한국어와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해서는 주말에 상담 봉사를 좀 했고, 지금은 번역을 좀 도와주고 있다.

--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 지원은 무슨 일인가.

▲ 대학원 다닐 때 용산구에 있는 한국선의복지재단이 1년에 2명씩 초청해서 무료 수술을 지원해줬다. 보통 아이들이 한국에 오면 2∼3일 안에 수술받고 7∼10일 정도면 회복해서 돌아갔다. 그때 병원에서 각종 검사하고 회복할 때까지 통역하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회사 일이 굉장히 바빠져 다른 베트남 친구들을 소개해줬다.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 응우옌티땀띵 씨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 응우옌티땀띵 씨

(서울=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제34회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귀화한 응우옌티땀띵 씨가 20일 서울 장안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2.11.21 khc@yna.co.kr

-- 베트남 결혼 이민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한국말을 정말 잘 배워야 한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아이가 베트남 말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엄마가 한국말도 잘하지 못하고, 아이가 베트남 말도 못 하면 소통할 수 없다. 아이들이 이중 언어를 하면 더 좋다.

-- 결혼 이주 여성의 남편들에게 조언한다면.

▲ 남편분들은 대개 아내에게만 한국에 빨리 적응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남편분들도 역으로 베트남의 문화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남편분들이 가장으로서 먹고살기 바빠 베트남어까지 배우기는 힘들겠지만, 문화라도 잘 이해한다면 정말 잘살게 되리라 생각한다.

-- 다문화 가정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 예전에 한국 남편분들을 위한 베트남어 교실에서 잠깐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면 베트남어를 배우려고 할까 생각하며 정말 즐거웠는데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에 반응이 좋았는데 남편분들이 바빠서 하나둘씩 빠지다 보니 그 교실이 없어졌다. 저는 지금 아이가 어려서 못하지만 언젠가 남편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

-- 딸이 5살이라던데.

▲ 귀화한 해에 베트남인 남편과 결혼하고 다음 해 출산했다. 호찌민 출신인 남편은 십여 년 전에 한국에서 알았던 친구였다. 남편도 전에 한국에서 일했었다. 남편은 결혼비자를 받고 같이 살다가 1월에 미국 아이오와주에 있는 대학 IT분야 학과로 유학하러 갔다.

-- 그동안의 한국 생활을 돌이켜본다면.

▲ 한국에 있으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연히 내가 다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크게 힘든 일이 없었다. 또 운 좋게도 사장님과 동료들을 포함해서 좋은 분들만 만났다. 생각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kh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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