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미군기지 이전 협정 20년] ②팝송 대신 적막감 도는 기지촌

송고시간2022-10-25 07:05

beta
세 줄 요약

과거의 동두천 기지촌을 회상하며 지역 주민들이 지금도 입에 올리는 농담이다.

캠프 호비 인근에 형성된 광암동과 캠프 케이시 인근 보산동, 양키시장은 외출 나온 미군들의 씀씀이와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물자 거래로 한때 번영했던 대표적인 동두천의 기지촌이다.

다른 기지촌과는 달리 아직 미군 관련 산업의 명맥이 미약하게나마 이어지는 곳이다.

요약 정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줄인 '세 줄 요약' 기술을 사용합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 본문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제공 = 연합뉴스&줌인터넷®
이 뉴스 공유하기
본문 글자 크기 조정

폐허같은 거리…미군뿐 아니라 한국인도 보기 어려워

'차 없는 거리'였던 관광지에는 차도 사람도 없어

(동두천=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개도 달러를 물고 다니는데 1달러짜리는 안 물고 가더라.'

과거의 동두천 기지촌을 회상하며 지역 주민들이 지금도 입에 올리는 농담이다.

90년대 동두천시 보산동의 외국인 위락시설 밀집지역-야간 거리풍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90년대 동두천시 보산동의 외국인 위락시설 밀집지역-야간 거리풍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캠프 호비 인근에 형성된 광암동과 캠프 케이시 인근 보산동, 양키시장은 외출 나온 미군들의 씀씀이와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물자 거래로 한때 번영했던 대표적인 동두천의 기지촌이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 이후에는 딴 모습이 됐다.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쇠락했다.

하지만 다른 기지촌과는 달리 아직 미군 관련 산업의 명맥이 미약하게나마 이어지는 곳이다. 미군 수가 급감하긴 했지만, 동두천에는 주요 전력인 다연장포 부대와 순환근무 부대 등이 남아있어서다.

◇ 팝송으로 시끄러웠던 기지촌 거리…지금은 적막과 텅 빈 간판만

동두천시 광암동 텅 빈 간판의 거리
동두천시 광암동 텅 빈 간판의 거리

[촬영 임병식 기자]

동두천 광암동은 캠프 호비 인근에서 1970∼1980년대 미군 관련 특수를 누렸던 동네다.

이달 중순, 동네에 들어서자 간판이 텅 빈 상점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건물 너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간판들이지만 하나같이 '백지' 상태라 기괴한 느낌까지 든다. 거주하는 이가 없는지 대부분 빈건물이다.

동네는 여느 시골 마을처럼 적막하다. 미군은 물론 한국인도 쉽게 찾을 수 없다.

'평강상회'라는 글자가 남은 건물 하나를 찾아 들어가니 소주와 세제 등이 드문드문 진열돼 있다.

가게를 집 삼아 생활하며 종일 TV 보기와 이웃 간 대화로 소일거리를 하는 80대 A씨에게서 달러가 넘쳐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이곳에서 당시 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거주하는 하숙집과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미군들이 외출할 시간이 되면 술집과 레코드 가게에서 서로 크게 팝송을 틀어대서 너무 시끄러웠다"는 A씨는 "저녁때마다 미군 상대로 장사하고, 외상을 한 기지촌 여성들에게 돈을 받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캠프 호비 출입문 바로 옆 점포 건물서 만난 B씨는 자신을 전직 전당포 주인, 현재는 백수라고 소개했다.

B씨에게 그 시절 미군은 한명 한명이 달러 그 자체였다.

모든 제품 수준이 미국보다 한참 떨어지던 시절, 급전이 필요한 미군이 맡기고 간 시계 신발은 물론 팬티, 러닝셔츠까지 모두 돈이 됐다고 한다.

"1988년 올림픽을 전후로 양국의 격차가 확 줄었던 것 같다"는 B씨는 "미군이 가지고 온 물건이 우리나라 물건보다 품질에서 밀리게 되고, 미군 상대 영업이 큰돈이 안되자 기지촌 여성들이 떠나면서 이 동네도 서서히 몰락했다"고 전했다.

장사가 잘되던 전당포는 지금 B씨의 거주지이자 가끔 지인들이 모여 술 한잔 하는 사랑방으로 변했다.

텅 빈 아파트
텅 빈 아파트

(동두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전국에 산재한 주한미군을 평택 등 5곳으로 통합해 재배치하는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Land Partnership Plan) 협정이 발효된 지 20년이 됐다. 이 협정은 사실상 경기북부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미2사단을 평택으로 재배치하는 계획이었으며, 협정 발효 뒤 경기북부에 머물던 미군 대부분은 평택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미군이 떠난 기지 일대는 여전히 빈 땅으로 남아 있거나 일대 기지촌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호비 인근 아파트에 오랫동안 사람이 입주하지 않아 수풀이 우거진 모습. 2022.10.25 andphotodo@yna.co.kr

부대 출입문 근처 언덕에 위치한 아파트는 지역의 쇠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아파트 출입문은 각종 건축 폐기물과 쓰레기가 쌓여 다닐 수도 없고 창문으로 보이는 건물 안까지 마치 폐허를 보는 듯 했다.

동두천시 광암동 캠프 호비 인근 아파트의 막혀버린 출입문
동두천시 광암동 캠프 호비 인근 아파트의 막혀버린 출입문

[촬영 임병식 기자]

당연히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이 아파트에도 현재 몇몇 세대가 거주한다고 한다.

동네에 사는 한 어르신은 "동네 형편이 어려워지며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다른 도시나 동두천 지행동 같은 역세권 쪽으로 떠났다"며 "경제적 형편이 안되거나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할 여력이 없어 남은 이들과 싼 주거비를 찾아 외지에서 온 나이 많은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차 없는 거리였던 보산동 관광지…미군도 차도 사람도 없어

보산동과 양키시장은 광암동과 달리 지역 특색을 살린 나름 관광지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교통과 물류의 발달, 미군 감소 등 요인으로 쇠락의 분위기가 짙었다.

동두천 생연동 양키시장에서 미군 관련 잡화점을 운영하는 80대 여성 C씨의 일과는 크게 두 가지다. 가게 안에서 멍하게 있거나 가게 앞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기. 요즘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지루하다.

동두천시 양키시장 미군관련 잡화 상점
동두천시 양키시장 미군관련 잡화 상점

[촬영 임병식 기자]

양키시장은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보급품과 양주 등 주류를 팔며 1960년대 무렵부터 번영했다. 지금도 거리 입구에는 양키시장이라 쓰인 큰 출입문이 있다.

최근에는 캠핑족이나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C씨는 "몇 년 전에는 조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에 물건 하나도 못 판다"고 말했다.

2대째 미군 군복 등을 취급하는 가게 사장 D씨도 "미국과 수출입이 자유로워지고 '직구'가 시작되며 사실상 양키 시장은 끝났다"고 말했다.

손님이 찾지 않은 가게에서 D씨는 주식 화면만 보고 있다.

D씨는 "낮에도 사람이 없고, 오후 4시를 넘어서면 거리가 적막에 싸인다"며 "가격을 정말 낮추지 않는 이상 손님이 없다"고 토로했다.

동두천시 양키시장 미군 피복 상점
동두천시 양키시장 미군 피복 상점

[촬영 임병식 기자]

대표적인 미군 기지촌인 보산동도 고요하긴 마찬가지다.

'차 없는 거리'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미군도 한국인도 거의 볼 수가 없다.

한때는 미군을 상대하는 술집과 클럽들이 성업했지만, 교통의 발달로 미군들이 좀 더 '핫한' 서울 홍대와 이태원을 찾게 되고 주둔 병력마저 급감하며 역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텅 빈 보산동 거리와 양복점
텅 빈 보산동 거리와 양복점

[촬영 임병식 기자]

그나마 손님이 있다는 양복점을 찾아 동네의 과거와 현재 분위기에 대해 들었다.

한국에 배치된 미군들은 전출, 진급, 귀국 등을 기념하며 정장을 맞추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재단사들이 미국 본토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기지촌에 맞춤 양복점을 차렸고 몇몇 가게들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

30여년 넘게 기지촌 양복점 일을 해온 E씨의 가게에는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입을 법한 화려하고 특이한 양복들이 진열돼 있었다.

"한창 장사가 잘됐을 때는 영어를 잘하는 영업사원까지 고용해 눈코 뜰 새 없이 일해도 주문이 끝이 없었다"는 E씨는 "지금은 특이한 스타일의 양복을 싸게 맞추려는 미군을 상대로 근근이 용돈 정도 벌고 있다"고 말했다.

동두천시 양복점에 진열된 미군 군복과 양복
동두천시 양복점에 진열된 미군 군복과 양복

[촬영 임병식 기자]

E씨는 동네 분위기에 대해 "세계 음식점 등을 만들고 관광지의 구색을 갖추려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다 잘 안 되고 있다"며 "예전에 미군을 상대로 한 클럽들이 외국인 여성 종업원을 고용해 한국인을 상대로 유흥업을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낮이고 밤이고 조용한 동네가 됐다"고 전했다.

jhch793@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오래 머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