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2002년 북핵·2022년 북핵…그들은 뭐라고 말할까
송고시간2022-10-14 09:21
(서울=연합뉴스) 황재훈 논설위원 = 2002년 10월 3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특사로 지명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비롯한 8명의 미국 대표단이 부시 행정부 출범 후 21개월 만에 재개될 첫 북미회담을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 2박 3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친 켈리는 5일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의 짧은 만남 이후 예정됐던 만찬 일정도 취소한 채 급히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열흘여 뒤인 같은 달 17일. "미국이 북한의 새로운 핵 의혹을 발견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켈리 특사단의 방북 기간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사용한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다"는 정부 당국자 발표도 나왔다. 강경 대외정책 일변도였던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 변화의 큰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켈리 방북은, 오히려 '영변 폭격설'까지 제기되며 최고조의 긴장으로 치닫던 1994년 제1차 북핵위기에 이은 제2차 북핵위기의 서막이 됐다.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비밀리에 진행되던 북한의 핵개발 활동은 이후 노골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핵동결 해제선언, 핵시설 봉인제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에 이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핵을 향해 질주했다. 2006년 처음 이뤄진 핵실험은 지금까지 6차례 실시됐다. 조만간 7차 핵실험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2017년 화성-15형 발사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핵 투발수단도 보유하게 됐다. 제2차 북핵위기가 시작된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 모습이다. "북한이 이미 이겼다"는 한 외국 전문가의 씁쓸한 얘기가 전해져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북한의 핵개발이 수면 위로 표출되지 않았을 때까지 국내 일부에서는 '북한은 핵을 개발한 적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노골화하자 '북한이 핵을 가져도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식의 주장도 있었다. 남한과는 상관없는 대미방어용이라는 얘기였다. 북한도 맞장구치듯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2018년 2월 조선중앙통신은 "우리의 핵무력은…(중략) 결코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의 핵무기는 철저히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모두 거짓말이 됐다.
올들어 남(南)을 향한 북(北)의 핵 위협은 본격적으로 수위를 높였다.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4월 5일 김여정 담화)이라는 입장이 나왔다. 같은 달 25일 북한군 열병식에서는 핵무기를 전쟁 방지용으로만 '속박'하지 않고 '국가 근본이익 침탈' 시도가 있을 때 사용하겠다는 언급이 북한 최고지도자 입에서 나왔다.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시사한 말로 해석됐다. 9월에는 북한은 핵무력 법제화까지 했다. "핵무기를 선제사용하는 것은 정신병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북한 핵무기를 공격용으로 볼 수 없다던 과거 일각의 주장 역시 무색해지게 됐다.
북한의 질주는 멈추기는 할 것인가. 북한은 지난 10일에는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 사실을 공개하면서 지난달 25일부터 보름간 7차례 발사한 탄도미사일에 '전술핵탑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차량, 열차, 잠수함 발사에 이어 저수지 수중에서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한 장면도 공개했다. '적의 주요 항구', '적 군사기지' 타격을 위한 훈련이었음을 명시하며 대남 핵위협을 숨기지 않았다. 12일에는 전술핵운용부대에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 2발을 시험발사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이 비밀리에 핵을 개발할 때는 그럴 리 없다고, 북한의 핵개발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는 '대미용'이라고 주장했던 이들은 2022년 북핵에 대해서는 어떻게 얘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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