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감사원 독립성 시비, 이회창ㆍ한승헌을 돌아본다
송고시간2022-10-06 14:33
이회창, '성역 없는 감사'로 감사원 독립성 기반 닦아
한승헌 "권력 눈치 보지 말라", 감사원 위상 강화에 기여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논설위원 = "감사원은 직무상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한 지위에 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의 부당한 간섭도 받지 않을 것이다."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김영삼(YS)의 취임에 맞춰 열린 대법관 이회창의 제15대 감사원장 취임식 일성은 정치권 등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짐이 곧 국가요 법이다'라는 말이 통했던 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당시 '국정운영 도우미'의 일원이 감히 독립을 선언했으니 말이다.
이회창은 먼저 청와대에 칼을 들이댔다. 대통령 취임 직전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만난 이회창에게 "국정을 제대로 감시해달라"며 원장직을 강권한 YS였기에 '청와대 문부터 열라'는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비서실의 적폐를 청소한 이회창은 단군 이래 최대라던 율곡사업(군 전력증강사업) 감사에 착수하며 성역이었던 군을 쳤다. 노태우 정부 때 국방부 장관 2명과 해군, 공군참모총장 등 별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기소됐다. 그러곤 내친김에 안기부에 들이닥쳐 평화의 댐 등 비리 의혹을 들춰냈다. 감사원 직원들이 안기부 직원들의 저항에 머뭇대자 '그대로 밀고 들어가라'는 지시를 내린 일화가 전해진다.
군과 안기부를 건드리고 전직 대통령 노태우를 서면 조사하자 여권에선 정치보복, 국기문란, 소영웅주의니 하는 불만이 들끓었지만, 감사원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치솟으면서 소음에 그칠 뿐이었다. 이회창의 재임 기간은 10개월에 불과했지만, 이를 기점으로 감사원은 대통령을 감싼다는 '감싸원'이라는 오명을 벗고 독립기관의 기반을 갖추게 된다.

감사원장 출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22일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이임인사차 당사를 방문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하사헌 1999.9.22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1연합뉴스. 무단배포 금지>
김대중(DJ) 정부 초대 감사원장이었던 인권변호사 한승헌도 이회창만큼이나 대통령이 어렵고 버거워한 인물이었다. DJ가 한승헌을 기용한 것은 '대쪽' 같은 원칙주의자가 감시자로 적격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승헌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단 한번도 이래라 저래라 한 적이 없다"며 "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감사를 못한 적은 없다"고 회고했다.
한승헌은 국회를 설득해 감사원장의 정년을 65세에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과 같은 70세로 연장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그는 법 개정 때 64세여서 3년 더 자리에 머물 수 있었지만 "원장 노릇 더 하려고 법 고친 게 아니다"라며 1년 만에 물러났다. 감사원의 위상 강화를 위해 자신부터 던진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지낸 판사 출신 최재형도 감사원 독립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임기 6개월여를 앞두고 사퇴해 야당 대선후보로 나서긴 했지만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를 주도하는 등 재임 중 성역을 건드려 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던 감사원이 독립성 시비로 시끄럽다. 국민권익위원회 등 야당 출신이 기관장으로 있는 부처 감사로 정치적 마찰을 빚는 와중에 감사원 사무총장이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언론에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내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야권의 '감사원 때리기' 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이다.
이회창은 '이회창의 삶과 세상 이야기'에서 대통령을 배의 선장에, 감사원을 선장이 배를 다음 항구까지 제대로 끌고 가는지 감시하는 자로 비유했고, 한승헌은 감사원 문을 나서면서 "권력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이번 문자 교환은 기관 업무와 관련된 활동이라는 게 양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선배들이 쌓은 국정 감시자로서의 전통과 역할에 맞는 처신이냐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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