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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구는 조상들의 삶의 이치 담긴 자료…속 이야기 봐야죠"

송고시간2022-09-26 06:11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 한중일 농기구 지식 집대성한 사전 펴내

평생 농기구 연구한 노학자의 집념…"'음양 조화' 반영된 문화 흥미"

전통 농기구 '그네' 시연 모습
전통 농기구 '그네' 시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낫 놓고 기역(ㄱ) 자도 모른다', '쟁기질 못 하는 놈이 소 탓한다', '솥은 부엌에 걸고 절구는 헛간에 놓아라 한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나 속담에는 농기구가 등장하는 경우가 적잖다.

농경 생활이 시작된 이후 오래도록 일상에서 사용해 온 도구이기 때문이다. 농사에 필요한 연장을 직접 만들고 손 보던 옛 농부들의 땀과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원로 민속학자인 김광언(83) 인하대 명예교수가 한평생을 농기구 공부에 매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69년 '한국의 농기구'를 시작으로 '한국농기구고'(1986), '디딜방아 연구'(2001), '지게 연구'(2003), '쟁기 연구'(2010) 등의 책을 펴낸 그가 최근 '동아시아 농기구 상징사전'을 출간했다.

1960년대에 우리 농가에서 쓴 110여 가지 농기구 가운데 82점을 뽑아 쓰임새와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고 중국, 일본의 농기구와 비교한 역작이다.

김 교수는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농기구는 한참 쓰다가 못 쓰게 되면 버리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조상의 생각, 깨달음, 삶의 이치 등이 똘똘 뭉쳐있는 자료"라며 농기구의 의미를 설명했다.

사전은 농사를 지어가는 과정에 따라 각 농기구를 '가는 연장', '삶는 연장', 씨뿌리는 연장' 등으로 나눈 뒤 어원과 용례, 분포도, 관련 속담 등을 정리했다. 상·하권을 모두 합쳐 1천976쪽, 방대한 분량의 기록이다.

김 교수는 "평생 농기구를 공부했지만 지나고 보니 '겉모습'에만 집중했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듯이 농기구에도 그런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파헤쳐보니 무궁무진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동아시아 농기구 상징사전 상·하
동아시아 농기구 상징사전 상·하

[민속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전에서는 같은 농기구를 한국과 중국, 일본으로 나눠 설명한 점이 눈에 띈다.

김 교수는 "동아시아의 농경 문화를 나무에 견주면 중국은 뿌리, 한국은 둥치, 일본은 가지"라면서 "세 나라 연장에 깃든 사람들의 생각을 가리는 일은 세 민족의 문화적 차이를 밝히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세 나라 농기구와 연관된 민속이 닮은 점이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예컨대 함경도에서는 농부가 입춘(立春)에 칼바람을 무릅쓰고 벌거벗은 몸으로 쟁기질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중국 남부의 소수민족인 먀오족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쟁기에 깃든 하늘의 양기가 대지의 음기와 짝을 이루면 풍년을 불러온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김 교수는 "농사에서 음양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 점을 세 나라가 같다. 나라마다 조금씩 (민속이나 풍습)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원리가 작용해왔다. 그런 부분이 재미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그간 펴낸 책들은 학계에서 '바이블'(지침이 될 만큼 권위 있는 책)로 꼽혀왔다.

그는 "내가 직접 현지에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며 "직접 보고 듣고 사진으로 기록한 내용이라 오류도 아주 적은 편이고, (다른 연구자들이)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을 아우르며 농기구의 역사와 유래를 설명하고 그 의미를 파악한 책은 아마도 처음"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책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전이 농기구의 '속 이야기'까지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연구가 아니라 그저 제가 하는 일이죠. 농기구 하나하나에 깃든 살아있는 이야기, 그 내면을 바라봐줬으면 합니다."

2020 한글주간 세중문화상 시상식 모습
2020 한글주간 세중문화상 시상식 모습

지난 2020년 열린 세종문화상 시상식에서 김광언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명예교수(왼쪽)이 대통령 표창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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