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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탈환작전 중 전사 해밀턴 쇼 美해군대위 72주기 추모식

송고시간2022-09-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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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고(故)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1922~1950·한국명 서위렴 2세)의 제72주기 추모식이 22일 고인의 동상이 있는 은평구 평화공원에서 열렸다.

해군협회가 주관한 이날 추모행사에는 엄현성 해군협회장(전 해군참모총장), 해군 예비역 단체 관계자, 해군 대표 장성과 장병, 은평구청 관계자, 일반 시민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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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협회 주관…맥아더 최측근 보좌관으로 인천상륙작전 참여

(서울=연합뉴스) 22일 은평구 평화공원에서 열린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제72주기 추모식에서 엄현성 해군협회장(전 해군참모총장)이 헌화하고 있다. [해군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22일 은평구 평화공원에서 열린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제72주기 추모식에서 엄현성 해군협회장(전 해군참모총장)이 헌화하고 있다. [해군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고(故)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1922~1950·한국명 서위렴 2세)의 제72주기 추모식이 22일 고인의 동상이 있는 은평구 평화공원에서 열렸다.

해군협회가 주관한 이날 추모행사에는 엄현성 해군협회장(전 해군참모총장), 해군 예비역 단체 관계자, 해군 대표 장성과 장병, 은평구청 관계자, 일반 시민 등이 참석했다.

추모행사는 경과보고, 추모사, 축도,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쇼 대위 추모행사는 매년 해군협회 주관으로 열린다.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 쇼 대위는 한국을 조국으로 여긴 6·25 참전영웅이다.

1941년 일제에 의해 추방된 후 미국에서 해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국가보훈처 제공] photo@yna.co.kr

1947년 전역 후 한국으로 돌아온 쇼 대위는 미 군정청 소속으로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해양경비대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해사 2기 생도들을 가르쳤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 공부를 하던 중 6·25전쟁이 터지자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며 미 해군에 재입대했다.

그는 한국에 있던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속에서 자유를 지키려고 피 흘리고 있는데 제가 흔쾌히 도우러 가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린 후 선교사로 가려 한다면 그것은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쇼 대위는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 보좌관인 해군 정보장교로 임명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또 작전 완수 후에는 자원해 미 해병대 5연대에 배속돼 서울탈환작전에서 싸웠다.

1950년 9월 22일 은평구 녹번동 근처에서 적 후방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쇼 대위는 적 매복조의 기관총 공격을 받아 28세에 전사했다. 일주일 후 유엔군은 서울을 탈환했다.

1956년 한국 정부는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는 은성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평생 한국을 위해 봉사한 부모와 함께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된 그의 묘비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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