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길다고 잡혀가 삼청교육대 탈출한 60대…"사과나 받았으면"
송고시간2022-09-19 12:00
사회보호법 위반 40년 만에 무죄…"인생 만신창이 변해 분하고 억울"
국가폭력에 트라우마 평생 시달려…"'국가가 미안했다' 한마디라도"
(원주=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서울 낙원동 집을 나서는데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공수부대원들이 다짜고짜 끌고 갑디다. 해병대에서 상처 입은 팔뚝을 보고는 흉악범으로 판단한 것 같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었어요."

80년 제5공화국정권창출의 소용돌이속에서 "사회정화"라는 미명아래 삼청교육대 입소생들이 봉 체조를 받고 있다.
1988.10.5 (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3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본사 자료)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려 직장조차 한 번 잡아 보지 못했는데 가정생활인들 평탄했겠느냐고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도저히 못 살 것 같아서 재심을 청구했지요."
사회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A(69)씨는 최근 춘천지법 원주지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2년 4월 형이 확정된 이후 40년 5개월 만에 무죄인 셈이다.
1980년 계엄 포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보호감호 중 탈출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재심 끝에 4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아낸 박모(69)씨는 분노와 억울함 속에 평생을 살았다.
박씨가 공수부대원들에게 잡혀간 것은 1980년 8월 30일 오전이었다. 계엄 포고 제13호가 발령(8월 4일)된 지 20여 일 만인 셈이다.
당시 20대 청년이던 박씨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 자신의 집에서 외출한 순간 공수부대원, 형사들과 맞닥뜨렸다.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생트집이 잡힌 박씨는 반소매 차림에 드러난 팔뚝의 흉터를 보자 공수부대원들이 자신을 흉악범이라고 판단했는지 경찰서로 끌고 갔다고 한다.
이후 다시 공수부대로 끌려가 4주간 이른바 삼청교육을 받은 박씨는 교육이 끝나면 귀가시켜준다는 말만 믿고 순화 교육으로 둔갑한 모진 매질과 온갖 폭력, 얼차려를 견뎌냈다.
하지만 4주가 지나도 귀가는커녕 이번에는 '근로봉사대'라는 명목으로 삼청교육을 사실상 6개월 더 받은 박씨는 구 사회보호법에 따라 보호감호 처분을 다시 받고 경기도의 한 군부대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때 삼청교육부터 근로봉사대, 군부대 내에서의 보호감호를 거치면서 두들겨 맞는 게 직업일 정도로 매일매일 폭력과 노동에 시달려 트라우마까지 생겼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19일 "아마도 9사단 백마부대로 기억하는데, 그곳에서 검사와 군인 등 사회보호위원이라는 사람들로부터 5년간 보호감호 처분을 받았죠. 무슨 영문인지도 몰랐죠. 매일 두들겨 맞고 사역하느라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라고 회상했다.
결국 박씨는 계엄 포고로 끌려간 이후 1년여만인 1981년 8월 17일 오후 8시 35분께 동료와 함께 당시 감호시설인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의 군부대 철조망을 넘어 탈출했다.
"탈출한 그 날은 비가 어마어마하게 왔어요.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한 거죠. 거기서 죽으나 탈출하다 죽으나 거기서 거기니까"라고 말한 박씨는 서울 자신의 집에서 4박 5일을 숨어 있다가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자수했다.

사회정화 목적으로 당국이 검거한 폭력.사기.밀수 마약사범들이 교육대에서 체력단련과 정신훈화 교육을 받고 있다./본사자료/1980.08.12(서울=연합뉴스)<저작권자 ⓒ 2001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계엄 당국은 자수한 박씨를 원주의 구치소에 보냈고, 박씨는 춘천지법 원주지원에서 사회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항소심에서는 '자수했다'는 이유로 징역 4개월로 감형됐다.
하지만 박씨의 수감생활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청송감호소로 옮겨져 또다시 3년여를 감호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84년 2월 엄동설한 속에 청송감호소를 나선 박씨는 갈 곳을 잃은 채 한동안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그나마 사회 친구들의 도움으로 문방구와 같은 작은 업소에서 일하고 결혼도 했지만, 당시의 트라우마 탓에 평탄하지 않았던 결혼생활도 파경을 맞았다.
박씨는 "날마다 지옥 같은 삶의 연속이었는데 가정생활인들 온전했겠어요. 억울함과 분노 속에 살다 보니 이제 70세가 다 됐네요"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국가폭력에 짓밟힌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해서 재판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다"며 "나이가 이제 70대인데 보상은 받아 뭐 하겠어요. 그저 억울한 내 인상에 대해 '국가가 미안했다'고 한마디라도 사과나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호소했다.
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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