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자의적 역사인식 전파 강화…박물관이 애국주의 교육기지"
송고시간2022-09-19 07:09
지린성·랴오닝성 등 고구려 전시도 자국 중심…"중국 정부 입장 확고해져"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16일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동방길금(동방의 상서로운 금속) -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 고대사 연표를 철거한 모습. 2022.9.16 jkhan@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최근 중국 국가박물관이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사 연표를 전시해 논란이 인 가운데 다른 박물관에서도 자국 중심의 역사 인식을 전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9일 학계에 따르면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재단이 펴낸 '동북아역사포커스' 최신호에 실린 연구 보고서에서 중국의 박물관들이 '애국주의 교육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는 박물관 교육을 통해 중화문명의 세계적 위대성을 주창하면서 자민족 중심의 자의적인 역사 인식을 전파하고 있다"며 최근 정책적으로도 이런 부분이 강화됐다고 봤다.
그는 특히 지린성(吉林省), 랴오닝성(遼寧省) 등 중국 동북 지역의 주요 박물관이 2017∼2019년 고구려 관련 내용을 전시한 내용을 보면 중국 중심의 역사 인식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구려 관련 전시를 보면 고구려가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의 하나인) 현도군 경역 안에서 건국했고 그 관할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 공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안(集安) 박물관 전시 내용에는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할 때, 고구려인이 모여 사는 구역에 고구려현을 설치해 현도군 관할하에 두었고 고구려현 경내에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돼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삼국사기', '삼국지', '후한서' 등에 따르면 주몽의 고구려는 기원전 75년에 현도군을 신빈(新賓) 지역으로 쫓아낸 후 기원전 37년에 건국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안·랴오닝성 박물관 등에서는 고구려가 한나라 이래 중원 왕조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과 삼국이 있던 시기에는 조공 책봉제가 완성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일부 박물관에서는 고구려 유민 다수가 한족으로 융합되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유민들이 발해, 고려를 건국하는 등 고구려 계승과 부흥을 실현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연구위원은 동북 지역 박물관에서 고구려를 보여주는 전시 방식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는 "전시 내용 전체를 중국사를 기준으로, 중국사 시각에서 정리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중국 전체 역사에 해당 지역의 역사가 속해 있었다고 인식하게 한다"고 했다.
고구려 유물을 가장 많이 전시하는 지안박물관의 경우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보다는 중원 왕조와의 관계, 중원 왕조로 인한 정치·문화적 영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설명문과 연표가 작성돼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동북 지역 박물관에서 고구려의 역사적 비중과 영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시가 기획된다는 점도 언급하며 "고구려와 한국의 연관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물관의 이런 전시 기조는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학계에서도 여러 설이 있는 문제를 자국 중심으로 바라보거나 일부만 다루며 전시하는 것은 대중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주는 '만들기 역사'로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최근 국가박물관의 '연표 논란'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베이징의 국가박물관 차원에서 (고구려, 발해 내용을 빼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중앙정부의 입장이 확고해진 것이며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류 보편의 가치관에 근거해서 공존, 공영하는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것"이라며 "역사 갈등을 빚는 국가 간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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