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재의 새록새록] 태풍과 함께 온 귀한 손님 '도요새'
송고시간2022-09-14 06:00
지느러미발도요·흑꼬리도요 등 각종 도요새 경포습지 찾아
과거 태풍 때 가장 빠른 새 '군함조' 강릉서 관찰되기도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이달 초 발생한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포항 등 동해안 남부에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그렇게 거센 비바람으로 큰 피해를 준 태풍은 아이러니하게도 귀한 손님을 함께 몰고 왔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빠져나간 날 아직 비바람이 거세게 불던 강릉 경포습지 일원의 수확을 마친 논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각종 도요새 무리가 날아들었다.
장다리물떼새와 붉은발도요, 흑꼬리도요, 종달도요, 알락도요 등 비교적 귀한 도요새들이 눈에 띄었다.
거센 바람을 몰고 온 태풍으로 힘들었는지 논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는 모습이었다.
장다리물떼새 4∼5마리는 지친 듯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거나 몸단장만 하기도 했다.
특히 흑꼬리도요는 100여 마리가 훨씬 넘는 무리를 이뤄 물이 자작하게 있는 이 논 저 논을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고 쉴 때는 열심히 몸단장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예전에 암컷 흑꼬리도요 한 마리가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1만1천500㎞를 쉬지 않고 1주일 만에 날아간 것이 위성추적 장치를 통해 확인됐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귀한 도요새는 벼가 누렇게 익어 수확을 앞두고 논에 나온 농민들을 피해 들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경포 들판에 나타나 먹이활동을 하던 도요새 무리는 태풍이 완전히 끝나자 하루 만에 모두 사라졌다.
또 태풍이 남쪽으로 지나던 날 강릉항과 남대천 하구에는 거센 파도를 피해 육지로 들어온 100여 마리가 넘는 지느러미발도요 무리가 관찰됐다.
태풍이 뜻하지 않게 귀한 지느러미발도요를 해안 가까이 불러들인 것이다.
나그네 철새인 지느러미발도요는 다른 도요새와 달리 물갈퀴가 있어 주로 외해에 머물러 섬이나 배를 타지 않으면 좀처럼 가까이 만나기 어렵다
태풍을 피해 내항으로 들어왔던 지느러미발도요가 높은 파도를 타며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무리도 태풍이 물러나고 파도가 잠잠해지자 다시 먼바다로 나간 듯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15년 8월에는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몰고 왔던 태풍 '고니'가 물러간 뒤 남대천 하구에 100여 마리가 넘는 지느러미발도요 무리가 찾아와 먹이활동을 벌이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좀 거슬러 올라가 2011년 6월 서해상으로 통과한 태풍 '메아리' 때는 열대 해양성 조류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로 알려진 군함조가 강릉시 경포호수 일원에서 포착됐다.
태풍의 영향으로 궂은 날씨가 이어지던 날 경포호 일원에 모습을 드러낸 군함조는 짙은 회색빛 창공을 큰 날갯짓 없이도 멀리까지 갔다가 어느새 다가오고, 그런가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등 호수 상공을 여유롭게 날아다니며 자태를 뽐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태풍이 끝나고 난 뒤에는 동해안에서 몇 차례 더 군함조가 멀리서 관찰되기도 했다.
도요새는 물론이고 수많은 철새가 바다 위로 장거리 이동한다.
이들이 태풍과 같은 기상변화를 만나면 길을 잃거나 바람에 밀려, 혹은 이를 미리 알아채고 거센 비바람을 피해 가까운 육지로 들어왔다가 태풍이 끝난 뒤 다시 먼 길을 떠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이런 귀한 손님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한 휴식과 먹이활동을 하고 건강하게 돌아가 더 풍성한 무리를 이뤄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yoo21@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2/09/14 06: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