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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잡아가 죽도록 때려"…형제복지원 피해자의 눈물

송고시간2022-08-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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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간 형제복지원에서 신상정보를 묻는 직원에게 다니던 직장과 가족들이 사는 집 주소까지 세세하게 말하며 자신이 '부랑인'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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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영문 모르고 끌려간 피해자 김병용 씨…"명예 회복했으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진실화해위 조사 1년…조속한 진상규명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진실화해위 조사 1년…조속한 진상규명을"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기자 = 군사정권 시절 부랑자 수용을 명목으로 감금·강제노역 등을 당했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4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와 청와대 앞에서 잇따라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진상규명과 실질적인 피해자 배상을 거듭 촉구했다. 사진은 이날 청와대를 찾아 요청서를 전달하는 이동진 피해자협의회 회장(오른쪽). 2022.3.4 allluck@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어디로 데려가는지 왜 끌려가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닭장차에 타라고 해서 탔지. 사람을 그렇게 강제로 부려 먹고 때리고…, 그 세월 생각하면 말도 못 해…."

김병용(67) 씨는 40년 전인 1982년 4월 일자리를 구하러 부산진역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단속반에 끌려갔다.

고등학교 중퇴 후 울산의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던 김씨는 "일단 간 뒤 죄 없는 사람은 나오면 된다"는 말에 트럭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김씨는 아버지의 방문으로 1983년 3월 형제복지원에서 퇴소하기까지 약 1년을 강제노역 등에 시달려야 했다.

끌려간 형제복지원에서 신상정보를 묻는 직원에게 다니던 직장과 가족들이 사는 집 주소까지 세세하게 말하며 자신이 '부랑인'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김씨는 "일하던 직장 옆에 있는 건물이 뭐였는지까지 구체적으로 말했지만, 직원은 '너 이 자식 거짓말하지 마'라며 내 말을 전혀 믿어주려고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뒤 한 달간은 '정신 교육'을 받았다. 형제복지원을 미화한 선전용 영화를 보며 '죄를 저지른 이들, 부랑아들이 형제복지원에서 땀 흘리고 일하며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세뇌받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병용씨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병용씨

[본인제공]

김씨는 "더 기가 막힌 건 이때 형제복지원이 수용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 아버지가 왔었지만, 직원들이 '새 사람으로 개조한다'며 아버지를 회유해 그대로 돌아갔다"며 "그때만 생각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까지도 한으로 남아있다"고 토로했다.

교육 기간이 끝난 뒤 김씨는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매일 하수도에서 퍼온 듯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래 자루를 짊어지고 비탈길을 오르고, 돌을 망치로 빻아야 했다. 매일 작업이 끝나면 빻은 돌 양을 계산해 가장 적은 15명을 추리고 이들을 곡괭이로 사정없이 때렸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당시 가정상황 때문에 잠시 집에서 나온 상태였는데 집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부랑인 취급해 막무가내로 잡아가 그렇게 일을 시키고 팼다"며 "나도 많이 맞았지만, 가족 없는 고아들은 말 그대로 죽도록 맞았다. 그 애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뒤에는 가족들조차도 김씨에게 "처신을 잘했으면 잡혀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냉정한 시선을 보냈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에 아픈 기억을 묻고 지내던 김씨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과거사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용기를 내 한달음에 달려갔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것도 그 용기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나라에서 '형제복지원에 잡혀갔던 사람들은 부랑인이 아니었다, 죄 없는 사람들을 끌고 갔다. 국가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명예가 좀 회복될 것 같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위는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피해자 및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보상 조처를 하라고 권고했다.

김씨는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삼청교육대…. 과거의 일을 묵인하면 또 이런 일이 나올 수 있다"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교육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도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chi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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