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여기가 선계인가…봉화 청량산 자락

(봉화=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경북 봉화 청량산 인근 지역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곳은 아니지만, 고요하고 청량한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아온 곳이다. 볼 것, 즐길 것들이 널려있고 역사 유적지도 많다.

12봉우리가 반원형으로 둘러싼 산 중턱에 포근히 앉은 청량사도 빼놓을 수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운무에 싸인 청량산 오른쪽 아래가 청량사다. [사진/성연재 기자]
운무에 싸인 청량산 오른쪽 아래가 청량사다. [사진/성연재 기자]

◇ 중국 황산 떠올릴만한 청량산

수년 만에 본 청량산(淸凉山·871.7m)은 역시 자태가 남달랐다.

때마침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 운이 나쁜 자신을 자책하며 몇 시간 기다렸더니 마침내 운무에 둘러싸인 멋진 풍경을 보여줬다.

청량산은 전국적으로 크게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중국 황산에 비해도 될 만큼 우람하고 멋진 자태를 가진 산이다.

깎아지른 절벽 6개에 또 다른 6개를 더했다는 뜻으로 육육봉(六六峯)으로 불리는 12개 봉우리는 웅장하고도 극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당대의 묵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청량산이라는 이름은 소수서원을 세운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산을 유람하고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을 쓴 것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주세붕뿐만 아니라 선비들이 청량산을 소재로 쓴 시만 해도 1천여 수에 달한다.

청량산을 무척 사랑한 사람 가운데 퇴계 이황도 빼놓을 수 없다.

운무 아래의 청량사 [사진/성연재 기자]
운무 아래의 청량사 [사진/성연재 기자]

그는 청량산을 너무나 사랑해서 도산서원 세울 자리를 두고 지금의 자리와 청량산을 놓고 무척 고심했었다고 한다.

1982년 도립공원이 된 청량산은 2007년 명승 제23호로 지정됐다.

청량산은 경북 청송의 주왕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기악(奇嶽)'으로 꼽힌다.

청량산은 이 때문에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등산 코스는 시간에 따라 1∼9시간까지 다양하다.

입석에서 청량사로 올라갔다가 선학정으로 내려오는 최단 코스(2.3㎞)는 1시간 정도로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청량사 5층석탑. 매년 가을 이곳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사진/ 성연재 기자'
청량사 5층석탑. 매년 가을 이곳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사진/ 성연재 기자'

안내소를 출발해 축융봉∼오마도터널∼경일봉∼자소봉∼하늘다리∼장인봉∼금강대를 거쳐 안내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는 최장 코스(12.7㎞)로 꼬박 9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유격훈련에 비할 정도로 험난한 곳들이 많아 초심자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그래서 청량산의 빼어난 절경과 하늘다리, 불교와 유교 유적을 두루 만날 수 있는 6시간 코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 공민왕·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 간직한 청량사

청량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청량사다.

그런데 산문을 지나 올라가는 길의 난도는 대한민국 사찰 중 톱클래스에 들어갈 정도다.

등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청량사 오가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느낄 수 있다.

아래쪽 주차장에는 큼지막하게 차량 통행을 절대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주차한 뒤 올라가니 과연 그 이유를 짐작게 할 만큼 가는 길이 가파르다.

청량사 경내 [사진/성연재 기자]
청량사 경내 [사진/성연재 기자]

자칫 승용차라도 올라갔다가는 미끄러지며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 지난 2003년에는 청량사 인근에서 관광버스가 계곡에 추락하면서 19명이 숨지는 참사도 일어났다.

이곳은 그만큼 지세가 험준하다.

그중 청량사 올라가는 길은 최고로 가파르다.

한참 걸어 올라가는데 폭우가 쏟아진다. 하는 수 없이 돌아와 주차장에 몇 시간 기다려야만 했다.

이윽고 하늘이 갠다.

다시 올라갔더니 가파른 길 위에는 절벽 위에서 떨어진 돌덩이가 수십 개 나뒹굴고 있다. 30여 분 정도 헐떡이며 올라서니 청량사 아래쪽 찻집이 보인다.

가파른 절벽에 조성된 청량사. 먼저 찻집(아래쪽)이 맞이한다. [사진/성연재 기자]
가파른 절벽에 조성된 청량사. 먼저 찻집(아래쪽)이 맞이한다. [사진/성연재 기자]

개인적으로 답답한 일 있으면 왠지 이유 없이 떠오르는,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장소다.

예전에 힘든 등산을 마친 뒤 이곳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차를 마셨던 기억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 문이 닫혀 있다. 아쉽기 그지없다.

하는 수 없이 5층 석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앞쪽 봉우리에 채 걷히지 않은 구름이 여러 겹으로 감겨 있다. 말 그대로 청량함 그 자체다.

청량사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가 전해 내려오는 절이다.

사찰에서 웬 러브스토리냐고 묻겠지만, 실상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함께 만난 지 11년이 되던 해 험준한 산악지형인 이곳 청량사로 피신한 것이다.

노국공주는 원래 원나라 왕족이었지만, 결혼한 뒤 고려를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원나라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공민왕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고 한다.

홍건적 난이 진압된 뒤 이곳을 떠나 환도한 그는, 이곳에서 간절히 드린 치성 덕분인지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출산 중 목숨을 잃고야 만다.

크게 상심한 공민왕은 그때부터 국정 돌보기를 게을리했다고 한다.

안동에는 노국공주의 피난길에서 유래한 '놋다리밟기'라는 전통 놀이가 내려오고 있다.

청량사 입구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는 직선거리로 9㎞ 남짓밖에 안 된다.

청량사에서는 매해 가을 청량사 음악회가 열린다.

청량사 경내에서 볼 수 있는 卍(만)자 [사진/성연재 기자]
청량사 경내에서 볼 수 있는 卍(만)자 [사진/성연재 기자]

아름다운 산속 청량사에서 흐르는 선율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 올해는 10월 1일 열린다.

내려오는 길에 청량사로 기어이 누군가 승용차를 끌고 올라온 모양이다.

가파르고 비가 와서 미끄러운 도로 위에서 차 바퀴가 헛돌았다.

고요한 청량사 자락을 흔드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아래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라 사고라도 날까 걱정됐다.

◇ 즐길 거리 산재한 청량산 인근

청량산 인근 명호면은 풍광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청량산으로 향하는 35번 국도상에서는 현수교인 '예던길 선유교'를 만날 수 있다.

차량이 통행할 수 없는 이곳은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청량산과 낙동강이 잘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다.

이곳에서는 청량산을 옆에 두고 흐르는 낙동강 위로 래프팅을 즐기는 행렬을 자주 볼 수 있다.

다음날 오전부터 해가 뜨자 래프팅 행렬이 줄을 이었다.

한쪽 옆은 역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내둘러져 있는 곳이었다.

노를 저으며 내는 힘찬 구령 소리가 절벽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청량산 조망하기 좋은 범바위전망대 [사진/성연재 기자]
청량산 조망하기 좋은 범바위전망대 [사진/성연재 기자]

봉화군에서 청량산으로 향하는 35번 국도 위에서는 전망이 트인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범바위전망대다.

전망대 위쪽에는 호랑이 모형 2마리가 아름다운 청량산을 바라보고 있다.

호랑이가 청량산을 바라보는 형세다.

고종 때 한양을 다녀오던 강영달이라는 사람이 선조 묘소를 바라보며 절을 하다 호랑이를 만나게 되자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불안정한 대기환경 탓인지 구름이 아래쪽 냇가에서 위로 올라가는 게 확연하게 눈에 띈다. 시원한 모습이다.

이곳은 물길이 굽이쳐 호랑이상 아래쪽으로 휘어져 마치 소 젖 모양 지형을 만들었다.

◇ 오지마을 카페 투어

청량산 전경이 바라보이는 한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청량산 전경이 바라보이는 한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이처럼 봉화에는 청량산을 제대로 감상할 포인트가 많다.

편안하게 앉아 청량산을 조망할 수 있는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카페가 대표적이다.

80년대 대학가에서 한두번 쯤 봤을 법한 이름의 이 카페는 청량산의 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듣자 하니 대권을 꿈꾸는 누군가도 이곳을 찾아왔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꽃차와 요구르트·시리얼 등 다양한 디저트로 명성을 크게 얻었으나 지금은 무인카페로 운영돼 자판기를 통해서만 차를 마실 수 있는 아쉬움이 있다.

이곳은 찾아가기 다소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좁은 산길로 차를 몰아야 하는데, 예전과 비교해 그나마 교행할 곳이 몇 군데 생긴 점은 다행스럽다.

청량산 인근에는 최근 다양한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다. 요즘 여행지의 요소 중 하나는 지역 환경과 특성을 살린 카페다.

눈에 띄는 한 곳은 1주일에 3일만 문을 여는 소천면 문화정거장이라는 곳이다.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봉화 시골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봉화 시골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문화정거장 바로 앞은 청옥산 자락인 구마동 계곡에서 흘러나온 청량한 계곡물이 냇가를 이룬다. 현동천이다.

이곳은 깊이가 완만한데다 운동장처럼 넓어 가족 단위 물놀이에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현동천을 건너는 작은 콧구멍 다리를 건너면 귀촌한 부부가 운영하는 문화정거장 카페가 있다.

이곳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 고유문화를 전파하는 데 주안점을 둔 곳이다.

깔끔하게 장식된 카페 안팎은 방문자들의 마음에 평안을 준다.

한쪽에는 한복과 우리 전통의 쟁반과 소반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수줍음을 타는 부부가 내주는 음료는 맛이 진하다.

단호박에 아이스크림이 가미된 단풍 라떼 [사진/성연재 기자]
단호박에 아이스크림이 가미된 단풍 라떼 [사진/성연재 기자]

달짝지근한 단풍 라떼는 단호박에 아이스크림이 가미돼 맛깔스러웠다.

부부는 이곳을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공간으로 쓰고 싶어 카페를 열었다고 했다.

현재 외국인에게 알려지는 한국 문화는 너무 대중적인 데다 고급스러운 우리 전통문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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