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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물가 폭등에 치안 악화까지…아르헨티나 한인들 '이중고'

송고시간2022-08-17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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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촌인 푸에르토 마데로 지역에서 15일(현지시간) 만난 김모 씨는 너털웃음을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거듭된 경제 위기 속에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그렇다고 위기에 익숙해진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기준 연 71%를 넘긴 물가 폭등과 페소화 가치 급락 등 경제 혼란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김씨와 같은 한인들에게도 예외 없이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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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땅' 찾아 왔는데…거듭된 경제위기에 어려움 커져

연 71% 인플레 속 범죄 증가…외국인 노동자 떠나 구인난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 의류상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 의류상점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1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지에 위치한 한인 소매 가게에서 손님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2022.8.17. sunniek8@yna.co.kr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요새 한국의 지인들과 친척들이 잘 지내냐고 부쩍 많이 연락합니다. 뉴스를 보면 여기 상황이 극빈국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촌인 푸에르토 마데로 지역에서 15일(현지시간) 만난 김모 씨는 너털웃음을 보였다.

한인 상가가 밀집해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베야네다 의류 도매상가에서 여성의류 전문점을 운영하는 그는 이민 38년차다.

아르헨티나의 거듭된 경제 위기 속에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그렇다고 위기에 익숙해진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기준 연 71%를 넘긴 물가 폭등과 페소화 가치 급락 등 경제 혼란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김씨와 같은 한인들에게도 예외 없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여기 한인들은 경제적 기반을 닦아 놓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지만, 한인 다수가 종사하는 의류업의 경우 수입 원단이나 부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함께 악화하는 치안도 고민거리다.

상위 1% 부자들이 사는 부촌에서도 오토바이 날치기나 총기 강도가 자주 발생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나라'라는 친척의 설득에 아르헨티나 이민을 택했던 그는 "수십 년을 살아온 이곳은 내 삶의 터전이지만 권총 강도를 한번 크게 당하고 나니 정이 떨어졌다"며 역이민이나 미국 재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베야네다 의류 도매상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베야네다 의류 도매상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1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베야네다에 광복절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의류 도매상가들이 모여있는 아베야네다엔 800여 개의 한인 매장이 있다. 2022.8.17. sunniek8@yna.co.kr

역시 여성 의류 도매업을 하는 30대 한인 2세 이모 씨의 상황도 김씨와 비슷했다.

비교적 탄탄한 사업체여서 경제적으로 부족함은 없으나, 가파른 물가 상승 탓에 생산과 가격 책정 등에 어려움이 커졌다.

정부의 수입제한 조치로 수입 원단과 부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금리 급등 속에 오직 현찰로만 선수금을 내야 원단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볼리비아 상인들의 저가 공세도 한인들을 위협한다.

한인들은 비교적 고급 옷을, 볼리비아인들은 저렴한 옷을 생산해 직접 경쟁 상대는 아니었으나,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악화하자 소비자들이 품질보다는 가격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소매상들의 관망세도 짙어진 탓에 연휴 후 16일 찾은 아베야네다 도매 상가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경제난과 함께 인력난도 가중됐다.

봉제 공장이나 매장 직원들 대부분은 다른 중남미 나라에서 온 이들인데, 아르헨티나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민자들이 늘었다.

이씨는 "인력이 부족하니 봉제 공장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부르고, 웃돈을 줘도 제때 생산하기 어렵다"며 "원단비와 봉제비가 계속 오르니 가격책정에 고민이 많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한 한인 의류 도매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한 한인 의류 도매점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베야네다 의류 도매상가에 위치한 한인 상점이 16일(현지시간) 오후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2022.8.17. sunniek8@yna.co.kr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월세가 높은 지역인 레콜레타, 카바시토, 팔레르모 등에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최모 씨의 최대 고민도 인력이다.

그는 "경제위기라서 구직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요즘 젊은 세대는 일하기를 싫어해서인지 점원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변호사, 엔지니어 등 고학력자를 포함한 베네수엘라 출신 인력이 많았는데 최근 대부분 본국으로 가거나 미국 또는 스페인으로 재이민했다.

최씨 가게에서 일하는 베네수엘라인 케이린은 "4년 전에 아르헨티나에 왔는데 지금 이곳 상황을 보면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는 것 같다"며 곧 멕시코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급등과 함께 가게 월세도 계속 오른다.

최씨의 경우 6개월마다 30%씩 월세를 복리로 올려주기로 계약했으나, 올해 세자릿수 물가 상승이 예상되자 건물주는 계약 수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고 했다.

의류업을 하는 한인뿐 아니라 전문직 한인 역시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한 한인 치과의사는 수입 의료 기자재의 가격이 급등한 데다 최근엔 구입 자체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국립대를 무료로 다닐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시스템에 힘이 빠진다"며 "졸업 후 외국으로 간 동료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이제라도 떠나야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털어놨다.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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