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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독립유공자 인정…"늦었지만 환영"

송고시간2022-08-12 10:57

보훈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시민단체 "독립운동가에 대한 당연한 예우"

김명시 독립운동가
김명시 독립운동가

[열린사회희망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창원=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서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린 김명시(1907∼1949, 경남 마산 출생)가 12일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지역 시민단체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창원지역 시민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일제 강점기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21년간 일제와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에 대해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예우"라며 "그러나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019년 1월 처음 김명시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등록을 신청하고 이듬해와 올해까지 재신청과 재심의를 요청했다.

이 단체는 "고향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 독립운동가를 세상에 알리고 그 공적을 인정받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더더욱 사회주의 독립운동이라는 부정적 시각 때문에 시민의 관심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압제에 신음하는 동포를 해방하고자 했던 독립운동이 민족주의 입장이건 사회주의 입장이건 적어도 해방되는 그 날까지 다르지 않았다고 확신했다"며 "우리가 하는 일이 한 독립운동가의 명예 회복뿐만이 아니라 반쪽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자평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국가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힘이 세진 만큼 폭넓은 심사기준과 열린 역사관으로 밀양 김원봉 장군과 같은 분에게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며 "그동안 김명시 장군의 친족이라는 말도 못 하고 냉가슴을 앓고 살아온 가까운 친인척 여러분에게도 축하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국가보훈처는 제77주년 광복절을 계기로 이날 김명시 장군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김명시 장군은 19살이던 1925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가 1927년 상하이에서 항일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일제의 만주 침략이 다가오던 1930년에는 하얼빈 일본영사관 공격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32년에는 국내로 잠입해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혹독한 심문을 받고 7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1942년 조선의용군 여성부대를 지휘하면서 '여장군' 호칭을 얻게 됐다.

한 손에는 총을, 다른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에 '백마 탄 여장군'으로도 불렸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극렬한 이념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1948년 10월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역사회에서는 그동안 김명시 장군을 기리기 위한 각종 사업을 진행해왔다.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은 지난해 창원시 양성평등기금에서 680만원(자부담 별도)을 지원을 받아 시내 고등학교 여학생들과 함께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그림책을 제작했다.

창원시는 2020년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 김명시 장군 생가터에서 그가 다닌 성호초등학교(옛 마산공립보통학교)로 향하는 오동서1길 돌담 골목 70여m에 '김명시 장군의 학교길'을 개장하고, 생가터에 표지판을 세웠다.

contact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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