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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저수지도 수도꼭지도 말랐다…멕시코 강타한 가뭄

송고시간2022-08-04 09:01

북부 몬테레이 재앙수준 물부족 사태…주택단지 며칠씩 단수 다반사

명색이 OECD 회원국 대도시권인데…급수차서 물 받아와 변기 내려

기후변화가 강수패턴 기현상 초래한 듯…해갈 위해 허리케인 기다려야 할 실정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시름하는 지구촌 현장의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몬테레이[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메마르고 황량한 풀밭에 식당 건물 한 채가 서 있다.

멕시코 북부 누에보레온주 산티아고에 있는 이 식당의 이름은 '엘플로탄테'(El Flotante). '수상(水上) 식당'이라는 뜻이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바닥을 드러낸 멕시코 라보카 댐 저수지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바닥을 드러낸 멕시코 라보카 댐 저수지

(산티아고[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산티아고 라보카 댐 저수지가 2일(현지시간)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2022.8.4. mihye@yna.co.kr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저수지를 찾은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들어가 물 위에서 식사를 즐기던 이곳은 메마른 땅 위에 방치된 채 찾는 이 없는 폐건물로 변했다.

이곳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진 아포다카 산타로사에 사는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얼마 남지 않은 식수로 늦은 점심 식사를 차렸다.

부엌 개수대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려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아 설거지할 그릇들은 그대로 옆에 쌓였다.

◇ 물 귀해진 몬테레이 일대…공용 급수시설마다 물통 행렬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일대에 극심한 '물 위기'가 닥쳤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메마른 땅 위로 올라온 저수지 수상식당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메마른 땅 위로 올라온 저수지 수상식당

(산티아고[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산티아고 라보카 댐 저수지가 가뭄으로 마르면서 과거 물 위에 떠 있던 식당이 2일(현지시간) 땅 위에 방치돼 있다. 2022.8.4. mihye@yna.co.kr

기후변화가 부추긴 가뭄과 물 수요 급증 속에 저수지가 말랐고, 물 공급이 줄자 당국은 단수를 시작했다.

3월 시작된 순환 단수는 점점 심각해진 끝에 6월부터는 오전 몇 시간만 수돗물이 나온다. 물이 나오는 시간에도 수압이 약해 졸졸 나오거나, 아예 며칠씩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일도 흔하다.

지난 1일과 2일(현지시간) 아포다카, 산니콜라스, 과달루페, 산티아고 등 몬테레이 일대에서 만난 주민들은 "지금 집에 수돗물이 나오냐"는 물음에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산타로사 주민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메마른 부엌 개수대를 보여주며 "물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호세 후안 발데스(42)도 집 앞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려 보이며 "하루 나오고, 이틀 안 나오고 한다"고 전했다.

편하게 수도꼭지만 열면 콸콸 쏟아지던 물을 구하기 위해 주민들은 이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실정이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수돗물 나오지 않는 멕시코 북부 가정집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수돗물 나오지 않는 멕시코 북부 가정집

(아포다카[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일대 물 위기가 심화한 가운데 1일(현지시간) 아포다카 주민 마리아 프란체스카가 물이 나오지 않는 부엌 수도를 보여주고 있다. 2022.8.4. mihye@yna.co.kr

지자체가 곳곳에 설치한 대형 물탱크나 '피파'(pipa)라고 부르는 급수 트럭에 하루 이틀에 한 번씩 가서 잔뜩 물을 받아오는 것이 일상이 됐다.

곳곳에 있는 급수시설엔 어김없이 플라스틱 물통을 갖다 대고 물을 받는 이들을 볼 수 있다. 급수 트럭이 자주 찾지 않는 지역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물을 받기도 한다.

양동이부터 빈 세제 통까지 10개가 넘는 통을 차에 싣고 와서 옅은 갈색빛이 도는 급수 트럭의 물을 받은 한 주민은 "주로 화장실 변기 내리는 데 쓴다. (그래봐야) 2∼3일쯤 간다"고 했다.

먹는 물은 사야 하는데 수요가 늘다 보니 물값도 1.5배쯤 올랐고, 그나마 대형 마트에선 사재기를 막기 위해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기도 한다. 급수시설 수질이 낮아지면 씻을 물도 사야 할 때도 있다.

주민들은 말 그대로 처음 닥친 '물 귀한 삶'에 힘겹게 적응해나가고 있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급수트럭에서 물 받는 멕시코 주민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급수트럭에서 물 받는 멕시코 주민

(산니콜라스[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일대 물 위기가 심화한 가운데 1일(현지시간) 산니콜라스 주민들이 급수 트럭에서 물을 받고 있다. 2022.8.4. mihye@yna.co.kr

아포다카 주민 알바로 타호나르(63)는 "새벽 4시부터 9시까지만 물이 나와서 물 나오는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물을 받는다"며 "세차는 꿈도 못 꾸고 세탁 횟수도 줄였다"고 말했다.

남편과 물을 받으러 온 마르셀라 카란사(40)는 "개 목욕은 거의 못 시키고 있다"며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물 위기는 서민들에게 더 가혹하다.

자체 급수시설이 잘 갖춰진 고급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물을 쓸 수 있고,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도 여유가 있으면 물탱크와 양수기 등을 설치하지만, 서민들은 꼼짝없이 야속한 수도꼭지를 원망해야 한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공용 물탱크에서 물 받는 멕시코 주민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공용 물탱크에서 물 받는 멕시코 주민들

(아포다카[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일대 물 위기가 심화한 가운데 1일(현지시간) 아포다카 주민들이 공용 물탱크에서 물을 받고 있다. 2022.8.4. mihye@yna.co.kr

◇ 말라버린 저수지…물에 떠 있던 배·수상식당도 흙바닥 위에

기반시설이 열악한 극빈국 오지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에보레온주 주도 몬테레이와 위성도시들을 합친 몬테레이 대도시권은 인구 500만여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권이다.

미국 국경과 가깝기 때문에 기아차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 공장도 많아 소득 수준이 높은 산업도시이며, 한인들도 많이 거주한다.

몬테레이 일대에 공급되는 물의 60%는 댐 저수지 3곳에서 오는데, 이중 세로프리에토 저수지는 지난달 이미 바닥났고, 라보카 저수율도 한 자릿수다. 나머지 엘쿠치요 댐 저수율은 40% 수준이다.

세로프리에토 저수지의 2015년(왼쪽)과 2022년 7월의 위성 사진
세로프리에토 저수지의 2015년(왼쪽)과 2022년 7월의 위성 사진

[미 항공우주국(NASA) 트위터]

2일 찾은 산티아고의 라보카 댐은 한눈에도 황량해 보였다.

두 곳의 수상 식당은 모두 육지 위에 올라온 채 영업하지 않고 있었다.

한때 물 위에 떠 있었을 배 몇 척도 모래밭이나 풀밭에 방치됐다.

흙바닥에 깔린 조개껍데기가 이곳이 한때 물 속이었음을 보여줬다.

그나마 수분이 남아있는 곳의 풀은 푸른색이지만, 비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자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말라갔다.

얼마 남지 않은 물에는 오리 떼가 모여 있었다. 헤엄칠 물도, 잡을 먹이도 줄어든 오리들은 사람이 다가가자 먹이를 기대하며 몰려들어 꽥꽥댔다.

주말이면 행락객들이 모여 보트도 타던 유원지였지만, 물이 마른 저수지를 찾는 이들은 없었다. 평일 오후였던 2일 이곳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온 남성 2명뿐이었다.

이 중 한 명인 아구아칼리엔테스주 출신 남성은 물가에서 뭍으로 100m쯤 떨어진 지점을 손으로 가리키며 "2년 전에도 왔었는데 그땐 저쪽까지 물이 차 있었다. 그새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는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입구에서 상점을 하는 로시오 실바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뒤져 저수지에 물이 많고 연휴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2∼3년 전 사진들을 보여줬다.

실바는 "지난해 몇 개월 사이에 물이 빠르게 말라갔다"며 "35년째 이곳에 살고 예전에도 가뭄은 있었지만 이렇게 물이 마른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물 말라가는 멕시코 저수지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물 말라가는 멕시코 저수지

(산티아고[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산티아고 라보카 댐 저수지가 2일(현지시간)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2022.8.4. mihye@yna.co.kr

◇ 기후변화가 부추긴 극심한 가뭄…당국 대비도 미흡

몬테레이의 저수지가 바닥까지 말라버리고, 주민들이 유례없는 물 위기를 겪게 된 일차적인 원인은 유례없는 가뭄이다.

지난 7월 누에보레온주에 내린 비는 예년의 10%에 불과하다고 당국은 밝혔다. 이미 6년 전부터 강수량은 예년 평균을 밑돌았다.

이번 가뭄이 인위적인 기후변화의 산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에 변화가 오고 가뭄 등 극단적인 기상 재난이 증가한다는 점에는 여러 과학자의 의견이 일치한다.

멕시코 지역 가뭄과 연관이 있는 기상현상인 '라니냐'(서태평양 해수 온도 상승으로 동태평양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도 기후변화를 만나 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아울러 지구 온난화로 저수지 물이 더 빨리 증발한 것도 물 위기를 부추겼다.

사무엘 가르시아 누에보레온 주지사는 최근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기 바로 그 결과가 있다. 이건 명백한 기후변화의 결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주민들에 물 공급하는 급수 트럭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주민들에 물 공급하는 급수 트럭

(산니콜라스[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일대 물 위기가 심화한 가운데 1일(현지시간) 산니콜라스 당국이 급수 트럭에 물을 채우고 있다. 2022.8.4. mihye@yna.co.kr

기후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당국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

가뭄과 물 위기에 특히 취약한 지역임에도 지속가능한 물 공급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몬테레이 일대에 기업체들이 찾아오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누에보레온주 인구는 2000년과 2020년 사이 50% 급증했다. 인구가 늘면서 물 수요도 45%(2000∼2013년)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공급량은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주민들은 가정용수 공급이 제한되는 동안에도 하이네켄, 코카콜라 등 글로벌 음료 기업들은 계속 공장을 돌리고 있다며 허가를 취소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포다카 주민 리카르도 마르티네스(41)는 "바로 국경 넘어 미국 남부 지역도 비가 안 오긴 마찬가지인데 이런 위기는 겪지 않고 있다"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말했다.

물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까지 동원해 물을 수송하는 한편 새 댐과 송수로 건설 계획도 밝혔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말라버린 저수지…흙바닥에 놓인 선박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말라버린 저수지…흙바닥에 놓인 선박

(산티아고[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산티아고 라보카 댐 저수지가 가뭄으로 마르면서 2일(현지시간) 선박이 땅 위에 놓여 있다. 2022.8.4. mihye@yna.co.kr

그러나 단기간에 물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은 아니다 보니 주민들은 8월 무렵 시작되는 우기에 큰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가뭄에 말라가는 멕시코 북부 저수지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가뭄에 말라가는 멕시코 북부 저수지

(산티아고[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산티아고 라보카 댐 저수지가 2일(현지시간)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2022.8.4. mihye@yna.co.kr

기후변화로 허리케인은 더 강력해졌고, 오랜 가뭄으로 딱딱해진 지반은 물난리에 더 취약하다. 가뭄이라는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허리케인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리카르도 마르티네스는 "허리케인 시즌이 끝나가는 9∼10월이 마지막 기회"라며 "그때도 큰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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