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내비게이션] 오늘도 금강산은 부른다

갈 수 없는 절경 향한 회한 담은 '그리운 금강산'
원곡은 좌절된 북진통일 염원 표현…정치적 이유로 1972년 가사 수정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일만이천 봉. 계절별로 부르는 이름마저 다른 산. 그만큼 한민족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명산. 바로 금강산이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절기를 맞아 가을엔 '풍악산'으로 부르는 금강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어도 가볼 수 없는 그곳이지만, 이 산을 소재로 한 노래들도 많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이라며 즐겨 불렀던 동요 '금강산'도 있지만, 무엇보다 금강산 하면 생각나는 노래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다.

우리 주요 가곡 중에서도 애창곡 1위로 꼽히는 국민 가곡인데다, 플라시도 도밍고, 조수미, 안젤라 게오르규, 볼쇼이 합창단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이 공연 또는 독집 앨범에서 부르면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금강산 가을 풍경
금강산 가을 풍경 2021년 10월 [조선중앙TV 화면]

◇ 문교부 주문 제작이지만 애창 가곡 1위 올라

그런데 사실 이 노래에도 한반도의 치열한 이념 대결 역사가 켜켜이 서려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원래 이 노래는 1961년 작곡가 최영섭이 문교부와 KBS의 의뢰를 받아 작곡하고 시인 한상억이 노랫말을 붙인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의 한 부분을 이루는 합창곡이다. 이듬해인 1962년 6·25 전쟁 12주년 기념식에서 연주하기 위해 만들었다. 정부가 주문 생산한 노래란 뜻이다.

상상해보자. 수백만 명이 죽고 다친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기념 노래를 만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결과물은 인간의 본성과 상식대로였다. 완수 직전 좌절된 북진 통일에 대한 회한, 분단의 아픔 등을 담은 가사와 비감한 멜로디가 세상에 나왔다.

특히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등의 가사는 격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했다. '피 흘려 자유를 지켜낸 대한민국 국민이 합심해 공산주의 세력이 빼앗아간 금강산을 하루빨리 되찾자'는 비장한 각오를 담은 노래였다. '멸공 통일'이 국시였던 당시 시대 분위기가 역사책처럼 생생히 드러난다.

금강산 천선대
금강산 천선대2020년 11월.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 北 심기 고려한 중앙정보부 요구로 가사 수정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이런 가사들의 일부는 정치적 이유로 수정된 적이 있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남북의 박정희 정부와 김일성 정권은 1970년대 들어 정치적 타협을 모색한다. 1970년 8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평화통일구상 선언을 발표하며 북측에 선의의 경쟁을 제안했고 인도적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남북은 마침내 1972년 8월 역사적인 첫 남북적십자 회담을 한다.

마침 이 무렵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리운 금강산'이 전파를 많이 타며 유명해지자 '윗분'들로부터 정치적 입김이 들어온다. 중앙정보부가 남북 화해 무드를 정치적으로 고려해 가사를 일부 수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주요한 정치 국면에서 북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란 얘기였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정보 당국의 뜻이 거절될 리 없었다. '더럽힌 지'는 '못 가본 지'로, '다 맺힌 원한'은 '다 맺힌 슬픔'으로, '짓밟힌 자리'는 '예대로인가'로 바뀌었다.

금강산 천선대
금강산 천선대2020년 11월.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우리가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의 불순한 의도가 문화예술을 영원히 변질시킨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진의 시황제 시절 분서갱유, 그리고 중국 마오쩌둥 정권 시절 홍위병들의 학계·문화계 탄압과 반달리즘 등이 있었지만, 유형의 문화재는 파괴된 적이 있어도 예술혼이나 역사적 진실마저 죽이진 못했다.

그리고 이 공식은 '그리운 금강산'에도 적용됐다. 권력 기관인 중정이 가사를 억지로 바꿨지만, 양심적 예술인들은 예술작품은 작품 그대로 남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도 원본 가사가 당시 정치적 이유로 검열됐던 수정본과 함께 그대로 전해온다.

특히 1985년 남북예술단 교환공연 당시 이화여대 음대 학장이었던 소프라노 이규도의 배짱은 대단했다는 후문이다. 실향민인 이규도는 당시 이 노래를 북한 땅에서 초연하는 것인데도 원곡 가사를 그대로 불렀다. 최영섭이 훗날 각종 언론 인터뷰 등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이규도는 공연 이후 무서워서 관광도 포기한 채 호텔 방에 칩거했다고 한다.

테너의 대명사 플라시도 도밍고도 1995년 내한 공연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는데, 멋진 목소리와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엄청난 환호를 받은 것을 넘어 검열한 가사 대신 원곡 가사를 선택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우리 정부가 가사까지 억지로 뜯어고쳤지만, 결국 '그리운 금강산'이 북한에서 금지곡이 된 건 씁쓸한 희극이다.

만물상 등산객
만물상 등산객금강산 관광이 처음 허용된 1998년 11월 우리 국민들이 금강산 만물상 주변을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공수표 전락한 금강산 관광사업

금강산은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 국민에게 갈 수 없는 상상 속 낙원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1998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그해 11월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던 고(故) 정주영이 당시 북한 통치자이던 김정일과 합의를 통해 금강산 관광길을 연 것이다. 초기엔 관광 대가로 매달 1천200만 달러를 주는 조건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요구가 커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에는 육로 관광도 시작됐다.

내금강 진주담
내금강 진주담2007년 5월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2008년 중단된 이후 재개가 요원한 금강산 관광 사업은 돌아보면 우리에게 많은 상처들을 남겼다. 현대 측이 북한에 준 돈이 핵 개발 자금으로 쓰였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미국의 대북 제재와 맞물려 사업은 부침을 반복했다. 현대그룹의 적통을 이을 후계자였던 정몽헌 전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막대한 돈을 북에 몰래 불법 송금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대북 송금 의혹 특검 수사에서 현대그룹이 북한에 송금한 돈은 무려 5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발표됐다. 당시 정권은 "이 돈이 북한 핵 개발 자금으로 쓰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북한이 핵을 개발할 기술과 의지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현재 북한은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금강산 관광 중단의 결정적 계기는 더 가슴 아프다. 금강산에 여행 간 우리 국민이 북한군 총격으로 피살되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평범한 50대 가정주부였던 고(故) 박왕자 씨는 설레는 유람 길을 떠났다가 남편과 아들 품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아들을 위로하며
아들을 위로하며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고 박왕자 씨 영결식장에서 남편 방영민 씨가 아내 영정 앞에서 아들 재정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08년 7월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로부터 14년이 흘렀으나 우리 국민이 금강산에 다시 갈 기회는 더 희박해진 듯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을 배제하겠다는 의중을 지난 2019년에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더 나아가 우리 측이 지은 호텔과 리조트 등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로 깎아내리며 철거를 명했다. 북한은 이후 우리 측과 합의를 무시한 채 각종 시설물을 무단 철거 중이라는 외신 보도들이 이어진다. 오랜 남북 관계의 교훈을 돌아볼 때 '합의'라는 게 의미 있는 단어인지 모를 지경이다. 하여튼 노래 가사처럼 지금도 우리 국민을 '금강산은 부른다'.

김정은현지지도
김정은현지지도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0월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현지 지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리운 금강산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 만 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기괴한 만물상과 묘한 총석정

풀마다 바위마다 변함없는가

구룡폭 안개비와 명경대물도

장안사 자고향도 예대로인가

*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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