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약값 인하 불복 소송에 건보재정 손실 눈덩이…5년간 5천730억원
송고시간2022-07-14 06:02
희귀질환자 10만5천명 1년 약값 해당…재정 손실 방지법안은 국회 법사위서 제동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정부의 약값 인하 조치에 반발해 국내외 제약사들이 법적 소송으로 맞대응하면서 건강보험이 막대한 재정손실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적 허점'을 이용한 제약사들의 소송 남용을 막기 위해 의원 입법으로 관련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건보 당국은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 불법 리베이트·재평가 기준미달로 약값 깎았지만, 집행정지 인용에 좌절
14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건보 당국은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대는 보험 약품들을 대상으로 각종 제도적 장치를 통해 약값을 깎는다.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가 대표적이며, 이외에 약품 재평가 과정에서 기준에 미달한 경우나 오리지널약의 특허 만료 등으로 최초 제네릭(복제약)이 보험 약으로 등재될 때 기존 오리지널약의 가격을 100%에서 70%로 낮추는 경우 등이다.
이렇게 정부가 보험 약값을 인하하면 이에 맞서 국내외 제약사들은 집행정지 신청과 더불어 행정처분 취소소송으로 맞불을 놓기 일쑤다.
약값 인하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후 행정소송에 돌입하면 최종 판결 전까지 대부분 약값 인하 조치의 효력이 정지돼 당장 매출 타격을 받지 않을뿐더러 그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의 약값 인하처분에 대한 소송 건수는 2018년 10건, 2019년 8건, 2020년 10건, 2021년 15건, 2022년 5월 현재 6건 등 최근 5년간 총 49건(종결 18건, 소송 진행 중 31건)으로 증가추세다.
최근 판례를 보면, 제약사 측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는 사유로 집행정지를 신청하면 법원은 이런 제약사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인다.
최근 5년간 제기된 약값 처분 관련 행정소송 49건 중에서 47건이 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인용을 받았다.
이렇게 되면 본안 소송 판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약값을 내릴 수 없게 된다.
국내외 제약사들은 이런 합법적 소송 절차를 활용해 정부의 약값 인하를 지연시켜 소송 기간 내내 큰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건보 재정에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건보 당국이 2018년 이후 집행정지가 인용된 소송 47건과 관련한 약값을 내릴 수 없게 되면서 발생한 건보 재정손실을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추산해보니, 무려 5천730억원에 달했다.
이런 손실 규모는 희귀질환 환자 등 10만5천명이 1년간 희귀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금액(2019년 기준 5천569억원)에 해당한다.
◇ 제약사 '소송' 방지책 담은 법 개정안 법사위서 제동
제약사가 약값 인하에 반기를 들고 집행정지 신청 후 행정소송을 벌이더라도 대부분 패소한다.
이 때문에 제약사가 소송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약값 인하 시기를 늦추려고 소송을 남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리구제 목적의 소송이 아닌 소송 기간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소송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재판 기간이 길어질수록 장기간 약값 인하 지연으로 제약사의 경제적 이익은 더 커지고 건보재정 손실은 더 불어나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처럼 국민 피해가 커지자 몇몇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제약사의 무분별한 소송으로 인한 건보재정 손실을 막고자 관련법 개정이 추진됐다.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할 경우 집행정지 기간 약값 인하 지연에 따른 건보재정 손실액을 제약사로부터 환수한다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남인순 의원은 약값 인하 관련 소송에서 위법성이 없다는 판결이 확정되면 건보공단이 제조업자에게 손실 상당액을 징수하고, 위법한 것으로 나와 정부가 패소하면 제조업자의 손실을 의무적으로 보전해주는 내용으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지난해 7월과 9월에 각각 발의했다.
이들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대안 법안으로 통과해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 회의에 상정됐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현행 소송법 체계와 부합하는지,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따라 제동이 걸려 지금까지 법안심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개정안은 제약사의 소송제기나 집행정지 신청 자체를 제한하지 않고, 집행정지 기간 발생한 건보재정의 손실이나 이익을 사후 정산하려는 것으로 특히 위법한 처분으로 제약사가 손실을 볼 경우 환급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오히려 제약사의 권리를 강화했다"면서 "국회 법사위 위원들을 상대로 법안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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