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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의 플랫폼S] 독일 차별금지법…주고받기식 타협의 전말은

송고시간2022-06-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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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을 위한 테크의 역할,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공전해온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다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가 조금씩 숙성되어가는 가운데 차별금지법 입법 문제를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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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진보 연정서 하원 통과했는데도 무산…중도보수 연정 처리

성적 정체성·종교단체 고용 시 종교차별 문제 놓고 공방

[※ 편집자주 :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을 위한 테크의 역할,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독일 동성혼 합법화법 통과 후 환영하는 시민
독일 동성혼 합법화법 통과 후 환영하는 시민

(EPA=연합뉴스) 2017년 6월 독일에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법이 통과된 후 시민들이 이를 환영하는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공전해온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다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됐다. 2007년에는 당시 노무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찬반 입장이 뚜렷한 가운데 합의를 찾아가기 위한 과정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국회 법제사법위 주관으로 처음으로 관련 공청회가 열렸는데, 이마저도 여당이 불참했다.

입법화 여부의 열쇠를 쥔 국회에서 정치적 논의가 한 발짝 나아가기도 쉽지 않은 셈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온 탓에 그동안 이 문제를 놓고 정치 세력 간에 특별히 치열하게 갈등을 빚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조금씩 숙성되어가는 가운데 차별금지법 입법 문제를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반쪽' 공청회라도 열린 상황에서 향후 정치적 논의 테이블에 올라갈 경우 사회적 찬반양론에 따른 갈등은 정치권으로도 옮겨붙을 수밖에 없다.

해외의 차별금지법 입법 문제로 눈을 돌려보면 독일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독일에선 차별금지법 격인 일반평등법(AGG)이 2006년 제정됐는데, 수년간 정치 세력 간 극심한 대립과 치열한 협상 끝에 합의가 이뤄졌다.

독일에서도 첨예하고 민감한 문제였던 차별금지법 입법을 둘러싼 공방전과 타협의 과정은 독일의 '생산적 갈등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레즈비언-게이 도시축제'의 친기업성향 자유민주당 부스
'레즈비언-게이 도시축제'의 친기업성향 자유민주당 부스

(베를린=연합뉴스) 2019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레즈비언-게이 도시축제'에 차려진 친기업성향 자유민주당 부스에서 시민들이 자유민주당 홍보물을 보고 있다.

◇ 나치 원죄로 '차별' 민감한 獨…EU 압박 속 차별금지법 논의

독일은 차별에 민감한 나라다. 민주주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나치 시대의 부끄럽고 끔찍한 기억 탓도 크다. 나치는 유대인을 상대로 인종 학살을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동성애자를 강제수용소로 보내 학살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만들어진 독일 헌법 격인 기본법에 성별과 가문, 고향, 인종, 언어, 종교, 정치적 견해, 장애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규정돼 있는 것도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반영이다.

하지만, 전후 독일 사회에서는 고용 현장 등에서 여전히 인종과 성별 등의 이유로 차별이 이뤄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럽연합(EU)이 2000년부터 반(反)차별지침을 내놓기 시작한 뒤 독일 사회는 6년 만에 독일판 차별금지법인 일반평등대우법(AGG)을 제정했다.

제정 과정에서 갈등은 극심했다. 법 취지 자체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세부 내용에서 이견이 뚜렷했다.

특히 성적 지향성의 차별 금지 포함 여부를 놓고 진보와 보수 진영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갈등의 맥락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엔 인권기구 등이 차별금지법 입법을 권고한 것과 달리, EU 반차별지침은 회원국이 관련 입법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는 독일 정치권에서 차별금지법 입법 여부를 논의할 수밖에 없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인종차별 반대' 인간사슬 시위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인종차별 반대' 인간사슬 시위

(베를린 EPA=연합뉴스) 독일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14일(현지시간)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인간사슬'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20.06.15

◇ 보수-진보 간 팽팽한 대치 속 '주고받기식 타협' 법 제정

당시 중도진보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으로 구성된 연립정부는 차별금지법 입법에 적극적이었다. 2004년 12월 법안을 발의했으나, 중도보수 야당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반발했다. 이들 정당을 뒷받침해온 보수와 종교계 일각,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성적 지향성을 차별금지 대상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재계는 고용 등에서 차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정은 야당의 반대에도 법안을 밀어붙여 2005년 6월 연방하원에서 처리했다. 그러나 최종 관문인 연방상원에서는 다수당이었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에 막혔다.

이들 정당은 중재위원회에 법률 중재를 신청했는데, 당시 슈뢰더 정부가 조기 총선에 나서면서 중재위가 열리지 못한 채 법안은 사장됐다.

총선에서는 야당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승리해 연정 구성을 주도했다. 선거에 패배한 사회민주당이 소수파로 참여한 대연정이 출범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온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도 여당이 된 입장에서 법제화 논의를 미룰 수 없었다. 유럽재판소는 독일이 차별금지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연정은 차별금지법 명칭을 일반평등대우법으로 변경해 뉘앙스를 다소 부드럽게 했다.

독일 '인종차별주의 반대 콘서트'에서의 묵념
독일 '인종차별주의 반대 콘서트'에서의 묵념

(EPA=연합뉴스) 독일 켐니츠에서 2018년 9월 3일 열린 인종차별주의 반대 콘서트에서 시작 전 묵념하는 시민들.

입법 논의 과정에서 대연정 내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은 입장차가 뚜렷했지만, 협상을 통해 좁혀나갔다.

결국 보수진영이 반대해온 성적 정체성에 대한 차별 반대 문구를 넣기로 한 대신, 진보 진영이 반대해온 종교단체의 고용 시 종교 차별을 인정하는 내용을 넣기로 '주고받기'식 타협이 이뤄졌다.

재계의 입장도 일부 받아들여 차별 관련 소송에서 반차별 단체의 개입 범위를 제한했고 차별 피해자의 입증 책임도 다소 강화했다.

그러면서도 일반평등대우법은 인종, 민족적 출신, 성별, 종교, 장애, 세계관, 연령,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EU 반차별지침을 충실히 따랐다. 일반평등대우법은 2006년 8월 발효됐다.

일반평등대우법이 독일 사회에서 차별에 대한 시민의 공감과 감수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7년 나온 '독일의 차별 경험' 보고서에서 1만8천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명 중 1명은 일반평등대우법상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 제정 당시만 해도 소수자만을 위한 법으로 여겼던 사회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차별을 경험한 이들 가운데 60%는 차별에 대응했다고 응답했다.

lkbin@yna.co.kr #이광빈의_플랫폼S #차별금지법 #일반평등대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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