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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자진월북'과 'JSA 권총자살'

송고시간2022-06-17 10:55

질문 답변하는 북 피격 공무원 친형 이래진 씨
질문 답변하는 북 피격 공무원 친형 이래진 씨

(안산=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의 형 이래진 씨가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A씨가 월북했다고 단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해경 발표를 지켜본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6.16 stop@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성한 논설주간 =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모티브가 된 김훈 중위(당시 25. 육사 52기) 사망 사건은 '권총 자살'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판문점 경비대대 소대장 김 중위는 1998년 2월 24일 낮 12시 30분께 JSA 241 최전방소초(GP)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우리 군 당국은 "김 중위가 권총으로 머리를 쏴 현장에서 숨졌으며 정확한 자살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이뤄진 초고속 발표였다. JSA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의 공식 발표는 톤이 좀 달랐다. 유엔사는 국방부 출입기자의 취재에 "육군 장교 1명이 숨졌다는 보고를 받고 경비병 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는 입장을 냈다. 유엔사는 "이번 사건이 비무장지대 내 어떠한 적대적인 행위와도 관련된 것은 아니다"며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군 당국은 '타살 흔적이나 외부인 침입 흔적이 전혀 없어 자살'이라고 확신했지만, 유족들은 "동기가 전혀 없다"고 맞섰다. 김 중위가 촉망받는 장교였던데다 부친(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의 영향으로 군인에 대한 자긍심이 누구보다 강했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군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는 지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멋대로 축소되고 왜곡되곤 하던 때였다. 웬만한 사망 사건·사고는 군 생활 부적응자의 자살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유족들은 김 중위의 명예 회복을 위해 길고 긴 싸움을 이어갔다. 2017년 8월 국방부는 "소대장으로서 임무 수행 중 '형태 불명의 사망'이 인정된다"며 김 중위를 순직 처리했다. 두 달 뒤인 그해 10월 28일 그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권총 자살'이 '형태 불명의 사망'으로 바뀌고 '순직'으로 인정받는 데 19년이 걸렸다.

오래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2020년 9월 21일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다가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 해안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과 여러 장면이 겹쳤기 때문이다. 해경은 군 당국의 첩보와 피해자의 도박 빚 등을 근거로 실종 공무원이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당시 발표했다. 북한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했다는 충격은 '자진 월북'이라는 신속한 발표에 좀 누그러지는 듯했다. 유족들은 '실족 등 다른 가능성도 크다'면서 당국이 단정적으로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반발했다. 정보공개청구소송도 제기했다. 대통령실은 16일 숨진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다는 발표는 잘못됐다며 정보공개청구소송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해경과 군도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고 발표 내용을 뒤집었다. 1년 9개월 만이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자진 월북'이라는 단정적인 첫 발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새로 드러난 것이 없는데도 정권교체 뒤 군과 해경이 판단을 바꾼 것 또한 께름직하다.

군이나 해경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해 말을 못 할 뿐 자진 월북 가능성에 여전히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도박 빚과 함께 자진 월북 판단의 핵심 근거였던 감청 자료 등 군의 첩보는 공개할 수 없는 보안 사항이다. 청와대가 국방부, 해양수산부 등과 주고받은 보고 내용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최장 15년간 봉인됐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거나 서울고등법원장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야 열람이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자진해서 월북했는지, 실족 등으로 표류하다 월북했는지 등 실체적 진실은 알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종전선언 유엔 기조연설을 앞두고 남북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국민이 숨진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서둘러 덮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 또한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ofcour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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