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사람이 지킨 숲, 사람을 지키는 숲 ①

화마에서 살아남은 '으뜸 숲' 울진 금강소나무 숲
보호수인 울진 500년 소나무[사진/조보희 기자]
보호수인 울진 500년 소나무[사진/조보희 기자]

(울진=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한국 최고의 숲으로 꼽히는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는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왕소나무가 있다. 산봉우리 정상에 우뚝 솟아 발아래 드넓은 숲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왕소나무 곁에 서서 바라보니 첩첩으로 이어진 산봉우리들을 덮고 있는 숲이 군데군데 갈색으로 얼룩졌다. 지난 3월 발생한 울진 산불이 할퀸 상처였다. 금강송 숲의 코앞까지 화마가 근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산불이 계곡 하나만 더 건넜더라도 금강송 숲과 대왕소나무가 사라질 뻔했다.

◇ 천년 숲, 화마에서 살아남다

소방당국, 산림당국, 주민, 군인, 경찰이 헬기, 산불진화차, 소방차, 드론진화대 등을 동원해 며칠 밤을 새워 사투를 벌인 끝에 불길이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덮치는 걸 막았다. 불줄기가 군락지 경계를 조금 넘어왔지만 천년 넘어 이어온 금강송 원시림은 무사했다. 위험했던 순간에 바람이 군락지 쪽으로 불지 않은 것은 천운이었다. 사람이 지키고 하늘이 도운 셈이다.

지난 3월 4일부터 13일까지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 동해에서 발생한 '동해안 산불'은 213시간 43분 만에 진화돼 역대 최장기간 산불로 기록됐다. 산림청 공식 집계로 산림 2만523㏊가 불에 탔다. 피해 지역 넓이는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강원 영동 지역은 대형 산불의 위험이 전국에서 가장 크다. 겨울부터 봄까지 다른 지역보다 습도가 낮고, 바람은 강해서다. 이 지역의 지난해 겨울 강수량은 평년(1991∼2020년) 겨울철 강수량(89㎜)의 14.7%인 13.3㎜에 그쳤다.

가족탐방로 전망대의 금강송 군락지[사진/조보희 기자]
가족탐방로 전망대의 금강송 군락지[사진/조보희 기자]

봄철 강원도 양양과 간성 지역에서 자주 나타나는 국지적 강풍을 일컫는 양간지풍은 강원 지역 산불이 크게 번지는 원인 중 하나다. 2005년 4월 양양 산간을 휩쓴 산불은 양간지풍을 타고 번지면서 임야 1천161㏊와 낙산사를 불태우는 참사를 일으켰다.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이 반복되고 대형화하지만, 가뭄과 바람만 원망할 게 아니라 체계적인 예방 노력을 지속한다면 산불 피해를 줄이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내화수림 조성, 산불 예방 개념을 담은 숲 가꾸기, 산불 진화 매뉴얼 구축, 진화 장비와 인력 확충, 진화에 쓰일 인공담수지와 임도 확보 등이 그 방법이다. 모두 돈이 드는 일이다. 숲 가꾸기와 산불 예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예산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

◇ 나무의 으뜸, 소나무

금강소나무 숲이 화마에 희생될 뻔했다는 급보에 놀라 울진으로 달려갔다. 숲의 건재가 궁금했고, 하늘을 향해 쭉쭉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가 새삼 보고 싶었다. 소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만큼 전국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햇볕만 있으면 족하다고 할 정도로 어디서나 잘 자란다.

그러나 금강소나무는 여느 소나무와 다르다. 가지가 옆으로 휘거나 뒤틀리지 않고 곧은줄기로 높게 자란다. 줄기의 위쪽은 좁은 삼각형 모양이다. 껍질은 얇고 붉은색이며 오래되면 거북이 등 모양으로 갈라진다. 젊고 싱싱한 나무일수록 몸통의 껍질이 붉다. 키 큰 금강송은 높이가 약 35m에 이르러 10층짜리 아파트보다 더 높다.

소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동부 등 동북아시아에 많이 자라지만 특히 한반도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나무로 꼽힌다. 소나무의 '솔'은 '으뜸'이라는 뜻이다. 금강소나무는 금강산, 울진, 봉화, 영덕 등 영동 지방에서 자라며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한다.

대왕소나무의 우람한 모습[사진/조보희 기자]
대왕소나무의 우람한 모습[사진/조보희 기자]

재질이 강해서 강송, 집산지인 봉화군 춘양면의 이름을 따서 춘양목이라고도 한다. 울진 전역에 금강송이 자생하지만 소광리는 최대 금강송 군락지이다. 이 군락지는 면적이 2천247㏊에 이르고, 1천만 그루 넘는 소나무가 자생한다. 200년 이상 된 고목이 8만5천 그루에 이르며 지름이 60㎝ 이상 되는 금강송도 1천600그루나 된다.

200년 이상 자란 금강소나무는 궁궐, 사찰 등 문화재 복원 자재로 쓰인다. 현재 4천여 그루가 복원용 목재 후보로 특별 관리되고 있다. 금강송이 즐비한 원시림은 신비와 경외를 불러일으키고도 남았다.

◇ '왕의 나무' 금강소나무

금강소나무는 결이 곱고 단단해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왕실의 건축용 자재로 쓰였다. 임금과 왕후의 관인 재궁을 만드는 데도 사용됐다. 재궁에는 오래된 소나무 안쪽의 노란 부분인 황장(黃腸)을 사용한다.

황장은 송진이 깊이 배어 결이 치밀하고 색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향이 그윽하다. 황장을 얻으려면 크고 오래된 금강소나무가 필요했기 때문에 조선 왕조는 금강소나무가 나는 산을 황장봉산으로 지정해 특별 관리했다. 울진 금강소나무 숲은 숙종 때 황장봉산으로 지정됐다. 울진 소광리 산 262번지에는 황장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황장봉계 표석이 남아 있다.

옛사람들은 오래된 금강소나무를 벨 때 벌목제, 고유제 등을 지내는 예의를 갖췄다. 벌목을 시작할 때는 '어명이요!'를 세 번 외쳤다. 임금의 명을 받아서 하는 일이니, 산신령이 양해하라는 의미였다. 큰 소나무를 베고 옮기는 것은 위험한 작업이다. 산신의 허락을 구하고 나무의 영혼을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안전 의식이 깃들어 있다.

탐방로 주변에 솟아 있는 금강송 거목은 경외감이 들게 한다. [사진/조보희 기자]
탐방로 주변에 솟아 있는 금강송 거목은 경외감이 들게 한다. [사진/조보희 기자]

◇ '1호 숲길'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울진 금강소나무 숲에는 탐방이 가능한 숲길이 조성돼 있다. 산림보호를 위해 탐방 인원을 제한하고 예약제가 실시된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은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가 관리하고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가 예약제 운용을 맡는다.

숲길은 현재 모두 7개 구간 79.4㎞이다. 대부분의 구간은 9∼10㎞로 거리가 만만치 않다. 다만 가족탐방로는 왕복 5.3㎞로 짧은 편이다. 13.5㎞인 1구간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1호 숲길로, 2010년 조성됐다.

금강송 숲 정상을 지키는 대왕소나무는 4구간에 있다. 이 구간은 왕복 10.48㎞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도중에 고개가 있고 가파른 구간이 제법 많다. 4구간은 쉽지 않은 탐방로이지만 발품의 끝은 절대 서운하지 않다.

능선에 위태롭게 선 대왕소나무는 수고 14m, 흉고 직경 1.2m이다. 당당한 위풍이 수호신인 듯하다.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 않다. 이 나무의 나이가 1천 살 이상이라고 보는 주민도 있다.

썩바골 폭포[사진/조보희 기자]
썩바골 폭포[사진/조보희 기자]

4구간에는 썩바골 폭포가 있다. 폭포는 좁은 바위틈에 형성돼 있었다. '돌이 많은 골'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시원한 물줄기 주변에 원시림이 보존돼 있어 희귀종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4구간에서 멀지 않은 샛재에 있는 조령성황사는 보부상들의 신변 안전과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하던 곳이다.

샛재는 동해안에 있는 울진 흥부장과 봉화의 춘양장을 잇는 보부상 길 중간에 위치한다. 소설 '객주'를 쓴 김주영은 이 보부상 길을 '한국의 차마고도'라 불렀다고 농업회사법인㈜ 왕피천힐링팜 소속 곽순영 숲해설가는 전했다. 샛재는 객주 마지막 권의 무대가 됐다.

가족탐방로에는 500년 소나무, 미인송, 금강소나무 군락 등 어린이는 물론 성인 탐방객의 흥미를 끄는 나무가 많았다. 500년 소나무는 수령이 530여 년으로 추정된다. 줄기가 굵고 튼튼한 보호수다. 오랜 세월 풍상을 이기느라 용트림하듯 가지가 휘감기기도 했다.

왕피천힐링팜의 이정애 숲해설가는 500년 소나무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털어놓았다. 건강이 좋지 못해 5분을 걷기 어려웠던 그는 소광리로 이사 와 매일 500년 소나무를 향해 조금씩 걷었다. 마침내 걸어서 나무까지 갈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아침마다 찾아가 굵은 줄기를 끌어안고 소광리에서 오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지금은 완쾌돼 숲길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곧게 뻗어 잘생긴 미인송은 수령이 약 350년, 수고 35m, 가슴 높이 직경 88㎝로 금강소나무의 특징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1950년대 발생한 산불에 검게 그을린 피해목도 볼 수 있었다. 울진 금강소나무 숲은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돼 있고,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다.

삼척 준경묘는 거대한 금강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삼척 준경묘는 거대한 금강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 조선 왕조의 '뿌리' 준경묘와 금강소나무 군락

울진 북쪽 삼척에는 조선 왕조 건국 설화가 얽힌 준경묘가 있다.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의 아버지 양무장군의 묘이다. 준경묘 일대도 금강소나무 군락지이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쭉쭉 뻗은 금강송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군락지 소나무들은 2008년 방화의 피해를 본 숭례문 복구 때 재목으로 쓰였다.

준경묘에 이르는 길에는 또 하나의 미인송이 있었다. 나이 95세, 키 32m, 가슴높이 둘레 2.1m였다. 이 소나무는 충북 보은군에 있는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렀다. 형질이 우수한 후계목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소나무 조림 역사는 신라 화랑도에 의한 식송에서 시작됐다. 고려 시대에도 소나무는 귀중한 임산자원으로 인정돼 보호됐다. 나무를 애호하는 정서와 숲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는 어느덧 한국인의 유전자로 뿌리내린 것 아닐까.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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