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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째 시집 낸 김혜순 "기도보다 비탄의 연대가 시인의 역할"

송고시간2022-04-2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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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불행의 번짐, 비탄의 연대"에 대해 떠올렸다.

쏟아낸 시구는 등단 40여 년 된 김혜순 시인의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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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출간…"시는 불행을 더 불행답게 하는 장르"

14번째 시집 낸 김혜순 시인
14번째 시집 낸 김혜순 시인

28일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인터뷰하는 김혜순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시인은 엄마의 죽음이란 아픔을 겪었다. 바깥세상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인류를 묶고 가뒀다. 미국 뉴욕타임스 1면엔 코로나19 사망자 명단이 깨알같이 실렸다. 자신도 지난달 코로나19에 걸렸다. 시인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불행의 번짐, 비탄의 연대"에 대해 떠올렸다.

"기도하는 것보다, 비탄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렇게 쏟아낸 시구는 등단 40여 년 된 김혜순 시인의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가 됐다.

시집은 시인 자신이나 타인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한 다정한 언어가 아니다. 마음의 생성에 따라 세상의 죽음에 탄식하고, 존재의 부재가 안긴 절망을 묘파한다. '피어라 돼지'와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등의 시집에서 낱낱이 형상화한 죽음의 연장선이다. 황인찬 시인은 "김혜순 시인만큼 죽음을 잘 발음하는 시인은 없다"고 했다.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시인은 "시는 불행을 더 불행답게, 슬픔을 더 슬픔답게, 파괴를 더 파괴답게 하는 장르"라고 했다.

세 챕터로 나뉜 시집은 엄마, 지구, 사막, 모래란 언어로 나아가며 "작별의 공동체"인 지구의 죽음을 증언한다.

죽음 주변을 맴돌던 엄마와의 치열한 시간(1부), 코로나19가 휩쓴 시대적 현실(2부), 작별한 존재와의 시간과 나날을 유영하는 모습(3부)이 그려진다.

14번째 시집 낸 김혜순 "기도보다 비탄의 연대가 시인의 역할" - 2

2부의 다섯 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무렵인 2019년에 썼다. 시인은 "엄마를 간호하는 시간은 치열했다"며 "잠시라도 거기 있지 않으면 불안해 시를 썼다. 엄마에 관해 쓴 게 아니라 (마음의) 생성 작용일 뿐이었다. 돌아가시고 있는 엄마, 사라진 엄마와 시 한편을 생성해 나갔다"고 했다.

한두 달 만에 금방 지어진 시들에는 '병실을 무대'로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오른 배우'가 된 엄마, 사물을 인간 취급하며 '시인들보다 말을 잘하는' 엄마의 모습이 기록됐다. 그리고 시인은 '이제 저 부엌은 끝났다'('엄마 온 엄마 오프')고 탄식한다. "병과 죽음의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만난 경험이 모든 시의 베이스"가 됐다.

'엄마는 나를 두 번 배신했다/ 첫 번째는 세상에 나를 낳아서/ 두 번째는 세상에 나를 두고 가버려서'('엄마란 무엇인가' 중)

'늙은 엄마들이 자기보다 더 젊은 엄마를/ 엄마 엄마 부르며 죽어가는 이 세계'('먼동이 튼다' 중)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출간한 김혜순 시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출간한 김혜순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그는 "사람을 태우고 난 재의 자리, 우리의 경험이 사라진 그곳"을 '사막'에 빗댔다. 사막을 채우는 모래는 바스러진 생명의 나날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팠어요. 그 충격으로 응급실에도 세 번이나 갔죠. 제 고통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었어요. 엄마와 저의 시간, 작별의 공동체가 만든 시간과 나날은 어디에 가 있을까. 어제의 시간으로 나가보고 싶었고, 저는 그곳을 사막이라고 불렀죠."

그는 "소통할 수 없는 고통의 자리에 가보겠다"며 3부의 시를 써내려갔다.

그중 표제작은 시인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며 전하고픈 메시지다.

'모두가 마지막 종(種)인 생물들이 사는 달에/ 초인종이 울린다/ 지구인의 비보가 계속 전해진다 (중략) 지구여, 인류의 멸종을 가동한 상영관이여/ 살다 간 이들의 원한으로 가득한 행성이여'('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사막 상담실' 중)

시인은 "달이란 단어와 딸의 어원이 같다. '딸은 누구를 돌지'란 의미이기도 하고 지구에서 일어난 코로나19, 전쟁에 대한 문제도 말하고 싶었다"며 "마지막 지구인이 달에서 지구를 쳐다보는 광경에서 쓴 시"라고 소개했다.

고통을 피력하는 능동적인 어법은 이번 시집에서도 어김없다. 그는 명사에 '~하다'를 붙이곤 한다.

'아빠가 죽자 엄마는 새한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동물한다'('미지근한 입안에서' 중)

"시는 비유나 상징이 아닌 이행의 영역이죠. 시를 쓰는 건 일종의 '다른 것 되기'이니까요."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과 스웨덴 시카다상을 수상한 김 시인의 시집은 해외 독자들에게도 읽힌다. 최근 덴마크에서 '죽음의 자서전'이 번역 출간됐고, 스웨덴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해외 독자와 만남에선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그는 "'여류 시인이란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초현실주의를 언제 받아들였는지' 등 시를 많이 접한 듯한 물음을 던진다"며 "해외 독자는 저에 대한 정보 없이 시로만 접하니 고정관념이 없다"고 말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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