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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일기' 우크라 작가 "전투기 소리날때마다 러시안룰렛 같아"

송고시간2022-04-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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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36)가 몸소 겪은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책 '전쟁일기'(이야기장수)의 표지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나고 자란 그레벤니크 작가가 8일간의 지하실 생활과 피란 과정 등을 연필 하나로 스케치한 다큐멘터리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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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그레벤니크 화상인터뷰…하르키우 아파트 지하실 숨어지내다 피란

"남편과 이별 장면 그릴 때 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울어"

"전쟁이 무너뜨리는 삶 되살리기 위해 생활 속에서 작은 거라도 창조했으면"

연합뉴스와 화상앱 줌으로 인터뷰 중인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연합뉴스와 화상앱 줌으로 인터뷰 중인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줌 캡처]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온통 검은 바탕 안에 슬픈 표정의 눈이 담겨있다. 두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36)가 몸소 겪은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책 '전쟁일기'(이야기장수)의 표지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나고 자란 그레벤니크 작가가 8일간의 지하실 생활과 피란 과정 등을 연필 하나로 스케치한 다큐멘터리 일기다. 작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그림 일부를 올렸다. 이 계정의 한국인 팔로워를 통해 그림을 접한 문학동네 출판그룹의 새 브랜드 이야기장수가 세계 최초로 출간했다.

지난 16일 연합뉴스와 온라인 화상 앱 줌으로 인터뷰한 그레벤니크 작가는 "아직 책의 실물을 접하지 못했다"며 "표지는 제 자화상"이라고 했다. "전쟁은 인격이 있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아요. 전쟁이란 검은색으로 덧칠해버리고 남는 건 오로지 슬픔과 공포에 가득 찬 눈과 눈물뿐이죠."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가 출간한 '전쟁일기' 표지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가 출간한 '전쟁일기' 표지

그는 9살 아들, 4살 딸과 함께 폴란드를 거쳐 현재 불가리아 소도시로 피란해 임시 난민 자격으로 체류 중이다. 현지 교회 도움으로 아파트에서 머문다는 그는 무척 슬프고 지쳐 보였다. 인터뷰 중간중간 두 아이가 엄마에게 안기며 화면에 나타나기도 했다.

작가는 하르키우에 남은 어머니와 남편 소식을 듣느냐는 물음에 크게 숨을 내쉬었다. 울컥한 듯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노부모 때문에, 남편은 계엄령으로 국경을 넘지 못해 함께 피란할 수 없었다.

그는 "가장 아프고 상처받은 부분"이라며 "어머니와는 갑작스레 10분 만에 이별해야 해 정말 많이 울었다. 남편과는 폴란드 국경까지 함께 이동해 르비우에서 헤어졌다. 감정적으로 굉장히 복잡한데, 매일 아침 전화해서 생존을 확인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진 전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두 아이와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모습
두 아이와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하르키우의 한 아파트 9층에 살던 그의 가족은 2월 24일 오전 5시 30분께 폭파 소리에 잠을 깼다. 남편과 짐을 싸고 자신과 두 아이 팔에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적었다. 책에 담긴 이 그림은 당시 작가의 심정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작가는 "전쟁 첫날이 가장 무서웠다"며 "실제 전쟁이 터질 거라 상상하지 않았고 모든 상황이 낯설고 무서웠다. 예전에 책에서 전쟁에서 혹시 죽게 된다면 식별을 위해 기록을 몸에 남겨둬야 한다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작가는 방공호가 된 아파트 지하실에서 여덟 밤을 보냈다. 이때 노트와 연필을 챙겨갔다. 평소 종이에 감정을 쏟아내면 마음이 가벼워졌던 그는 "연필로 그림을 그릴 때 잠시나마 현실 도피를 할 수 있고 두려운 감정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제 그림들이 전쟁일기가 될 줄은 몰랐어요. 며칠만 숨어지내면 공포스러운 상황이 끝날 거라 여겼으니까요."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책 '전쟁일기' 속 그림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책 '전쟁일기' 속 그림

딸 베라의 팔에 적은 인적사항과 연락처 그림(왼쪽), 방공호가 된 아파트 지하실에 모인 사람들(오른쪽) [이야기장수 제공]

지하실에 머물던 작가는 밖이 조용하면 집으로 가 짐을 챙기고 음식을 준비했고, 폭격이 시작되면 다시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전쟁 첫날부터 작동하지 않았다. 지하실엔 노인, 임신부, 아이들도 있었다. 무서워하던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분필로 벽에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그 생활에 적응해갔다. 피란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우울해졌다. 작가는 "제가 떠난 뒤 출산한 분들은 갓난아이와 함께 지하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휴대전화로 뉴스를 접하며 도시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작가는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유럽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 문화 수도라 할 수 있다"며 "뉴스를 볼 때 두렵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것 같다. 지하실에서 폭발 소리나 전투기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소리가 다 들렸다. 마치 러시안룰렛 같았다. 전투기가 우리 집 근처를 (그냥) 지나가는 건지, 집이 폭격당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지하실에서 보낸 8일은 마리우폴같이 더욱 위험한 지역에서 훨씬 오랜 기간을 보내는 분들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쟁은 무서워요. 사람을 산 채로 고기를 다지는 기계에 넣는 과정과 같죠. 운이 따를지 안 따를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니까요."

폴란드 국경에서 남편과 이별하는 모습
폴란드 국경에서 남편과 이별하는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전쟁일기' 속 그림 일부는 실제 폭격당하는 전쟁터의 지하실에서 숨어 그렸고 마저 그린 스케치는 안전지대인 불가리아에서 그렸다고 한다.

그는 "지하실에선 감정을 느꼈다기보다 기록을 위해 손이 자동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었다"며 "남편과 헤어지는 장면은 불가리아에 와서 그렸는데 그 상황을 떠올리며 너무 많이 울어 종이 전체가 너덜너덜해졌다"고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작가는 지난달 18일 이야기장수로부터 책 출간 제안을 받았다. 노트 속 그림과 글을 파일로 묶고, 급박한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쓴 글을 보완했다. 편집자인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와 번역가 정소은 씨가 밤낮으로 소통해 20일도 채 안 돼 이달 5일 책 제작을 넘겼다. 출판사는 낱장 사진으로 받은 그림의 연필 선 하나하나와 글의 원문을 그대로 살렸다.

러시아와 스페인 등 세계 15개국에서 삽화를 담은 책을 냈던 작가는 "이런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뛰어난 전문성과 빠른 피드백, 작업 속도, 철저한 정확성은 제게 감동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책을 냈지만, 작가의 책과 인생에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작업해준 곳은 처음이었다"고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이야기장수 제공]

한국 출판사 덕분에 연필로만 스케치한 책을 처음 냈다는 그는 "한국 국민이 머나먼 나라의 전쟁 반대와 평화를 외쳐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가장 숭고한 건 사람의 생명이다. 전쟁에 우승자는 없다. 인류 역사상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더는 전쟁 일기를 스케치하고 있지 않다.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다. 폴란드 출판사 책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원래 제 그림은 여러 색상이 담긴 마술 요소가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림들은 화려한 색감에 동화적 상상력이 가득했다.

그가 지금 희망하는 건 어머니, 남편과 건강한 모습으로 하루빨리 만나는 것이다.

작가는 전쟁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전쟁이 (삶을) 무너뜨리고 있으니, 우린 그걸 되살리기 위해 생활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창조하는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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